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5] '이베트 길베르'

바람아님 2013. 7. 20. 10:11

(출처-조선일보 2011.06.07  우정아 KAIST 교수·서양미술사)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목이 긴 검은 장갑을 낀 여인이 무대 밖으로 몸을 반쯤 내놓은 채 인사를 하고 있다. 그녀는 19세기 말, 파리 몽마르트르의 화려한 유흥가를 지배하던 전설적인 가수, 이베트 길베르(Yvette Guilbert)다. 당대의 유명한 카바레 물랭 루주에 길베르가 처음 등장한 순간, 어지간해서는 꿈쩍 않는 물랭 루주의 단골들도 그녀의 노래에 넋을 잃고 빠져들었다.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의 '이베트 길베르'〈사진〉는 객석의 열띤 호응에 답하기 위해 다시 무대에 오른 가수의 여유 있는 몸짓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길베르는 항상 미동도 없이 꼿꼿이 선 채, 검은 장갑을 낀 두 팔만 춤추듯 움직이며 노래했다. 그녀의 또록또록한 목소리는 가사를 한 글자씩 새겨 넣듯 청중의 귀를 파고들었다. 그러나 발랄한 리듬에 반해 가사는 비극적이었다. 그녀는 실연의 아픔과 배신의 고통, 가난 때문에 겪어야 하는 온갖 고난을 노골적인 언어로 거침없이 쏟아냈다. 슬프지만 웃음이 나고 처절하면서도 감상적인 사연 중 많은 부분은 실제로 빈민가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생계를 위해 노래를 불러야 했던 길베르가 직접 작사했다.

툴루즈-로트레크는 길베르의 절친한 친구였지만 단 한 번도 그녀를 예쁘게 그려주지 않았다. 유서 깊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어려서 말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장애인이 되어 파리의 유흥가를 전전하며 살았던 천재 화가, 툴루즈-로트레크의 눈에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 가벼운 음색으로 우울을 노래하는 디바의 초췌한 내면이 보였던 모양이다.



툴루즈 로트레크의  '이베트 길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