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문화 실험실]종이갑옷인데 조총도 못 뚫었다니…

바람아님 2016. 8. 23. 23:53

동아일보 2016-08-23 03:00:00


조선시대 갑옷 어땠을까

《‘부산행’을 택했다. 최종 목적지는 부산 금정구에 있는 ‘한국의 전통 갑주’(대표 최항복)였다. 한국의 옛 갑주(甲胄·갑옷과 투구)가 과연 어느 정도 수준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택한 곳이었다. 국립중앙박물관 등 전시관에서는 조선 갑주를 볼 수는 있었지만 입을 수 없었다. TV용 갑옷은 겉모양만 비슷하게 흉내 낸 ‘소품’이다. ‘한국의 전통 갑주’는 40여 년간 조선의 종이 투구를 만든 연구소란 소개를 받았다. 그곳에 당도한 때는 폭염이 한창인 오후였다.》
 

○ 조총을 너끈히 막던 조선의 갑주

연구소엔 에어컨이 없었다. 최 대표는 ‘목형(木型·나무 제작 틀)’을 사용한 전통기법으로 만든 투구부터 문헌을 참고해 무게까지 비슷하게 만든 갑옷까지 한 벌의 온전한 조선 후기 ‘두정갑(頭釘甲)’을 내줬다. 무게가 20kg인 갑옷과 2kg 넘는 투구를 입고 쓰고 ‘드림’(투구에 달린 얼굴 가리개)으로 얼굴을 가리니 땀이 주르륵 쏟아진다.

두정갑은 신용카드 절반 크기의 쇳조각 수백 개를 천 안감과 겉감 사이에 넣고 둥근 머리 못인 ‘두정’으로 고정해 만든 갑옷이다. 쇳조각이 직접 닿는 이전 갑옷에 비해 상대적으로 착용감이 좋아 조선시대에 ‘국민 갑옷’이 됐다. 최 대표는 “두정갑의 내구력은 임진왜란 시절의 조총이 뚫기 힘든 정도였다”고 말했다.


○ ‘가성비 갑’ 종이갑옷(紙甲)

이곳에서 입은 두정갑의 주요 소재는 쇠였지만 조선시대엔 가죽(皮), 종이(紙)도 사용됐다. 비싸고 구하기 힘든 철 조각에 비해 주변에서 구하기 쉬운 돼지가죽, 한지가 널리 쓰였다.

그중 종이는 흥미롭다. 질긴 한지를 송진, 아교 등 접착제로 겹겹이 붙인 뒤 옻칠을 한다. 무게는 플라스틱만큼 가볍지만 내구력은 쇠 못지않게 단단해진다. 옻칠만 한 고깔모자 크기의 종이투구 원형의 무게는 200g도 되지 않았다.

관청에서 과거시험 등에 쓰인 종이는 종이갑옷으로 재활용됐다. 김성혜 육군박물관 부관장은 “한지 13겹 이상이 일반적으로 쓰였는데 조총이 뚫기 힘들었다. 값이 싸고 옻칠로 방수와 보온이 됐으며 겹수를 더할수록 내구력이 좋아졌다. 무게가 쇠의 절반도 안 돼 오늘날의 ‘기능성’ 소재라 할 만큼 애용됐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가성비가 좋은 소재라 일반 백성들도 종이로 만든 갑옷을 쓸 수 있었다.

“갑옷 입은 무사에게 타격을 줄 방법은 두 가지로 요약돼요. 갑옷이 방어하지 못하는 목, 겨드랑이 등을 노리거나 철퇴 등으로 갑옷 위를 때려 충격을 주는 것입니다. 조선 갑옷은 조총이나 일반적 칼로는 치명상을 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했습니다.”(최형국 한국전통무예연구소장)

직접 입어본 경험과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종합했을 때 조선 갑옷은 꽤나 강력한 방어력을 갖추고 있었다. 할리우드 히어로 물이 범람하는 요즘, 한국적 캐릭터를 만든다면 특수 종이갑옷을 입은 캐릭터를 만들어 내도 어색하지 않겠다는 느낌이었다. 서울행 KTX 안에서 문득 종이 소재 기능성 전투복을 입은 한국 히어로가 빌딩 숲을 누비는 스토리 라인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부산=김배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