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中國消息

[취재파일] G20 개최에 대처하는 중국의 자세

바람아님 2016. 9. 3. 23:51
SBS 2016.09.03. 12:35

기자가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한 지 얼마 안됐을 때니까 2004년쯤 됐을 것 같다. 아침 출근길이었는데 그날은 이러 저러한 이유로 집에서 좀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지각할까 봐 운전대를 잡는 마음이 급했다. SBS 지국 사무실이 베이징 시내 한 복판인 창안졔(長安街)에 있어서 보통 고속도로를 타고 시내 외곽까지 간 뒤 시내로 진입해야 했는데 그날 따라 고속도로 입구에 경찰이 쫙 깔려있었다. 고속도로에 차량 진입이 통제된 것이다.

우리나라 인천공항 격인 베이징 서두우 공항에 도착한 외국 총리가 베이징 방문을 위해서 고속도로를 통과하는데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교통 통제를 했다는 것이다. 30분간 꼼짝 못하고 발만 동동 굴렀던 기억이 새롭다. 이후에도 외국 고위 관리나 유명인사들이 올 때면 예고 없이 고속도로를 막아버리는 바람에 여러번 낭패를 봤다.


한 번 통제되면 30, 40분은 기본이고 1시간 가까이 황당한 상황이 계속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에 주재하는 동안 한번도 이런 교통 통제가 시민들의 생활을 불편하게 한다는 지적이나 이에 대한 개선 방안을 촉구하는 중국 현지의 기사 혹은 여론을 접해본 적이 없었다.
 
베이징에서 남쪽으로 나 있는 고속도로는 골프장과 유원지, 산업시설과 연결돼있어 교통량이 상당히 많은 편인데 특히 주말에 차량 이동이 집중됐다. 게다가 안개도 많이 끼어서 교통사고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데 이렇게 되면 말 그대로 고속도로는 거대한 주차장으로 변했다.


기자를 비롯한 외국인들은 차에서 내려 빨리 사고 처리가 끝나서 차량 통행이 재개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며 불평하고 있는데 중국인들은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차에 미리 넣어 둔 버너 같은 요리 가능한 간편 기구를 꺼내 도로 위에 모여 앉아 컵라면 등 인스턴트 식품을 끓여 먹으며 느긋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이들은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보통 한, 두 시간은 걸린다는 것을 경험치로 알고 나름 즐기는 법을 터득한 셈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중국인 운전자들이 불평과 짜증을 내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하늘에는 천당이 있고 땅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下有蘇抗)는 중국 말이 있을 정도로 중국인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항저우란 아름다운 도시에 최근 국제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를 준비하면서 중국 당국이 이 지역의 보안과 감시를 강화하자 구설수에 오른 것이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 등 외신들은 항저우 시민 600만 명 중 200만 명이 각국 수장이 항저우에 발을 들이기 전 도시를 떠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G20 기간 동안 교통 체증을 완화하고 사람들이 도심 곳곳에서 붐비는 것을 막기 위해 중국 정부가 항저우 시민들에게 주말 동안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무려 100억 위안, 한화로 약 1조 6770억 원에 달하는 여행 상품권을 지급했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행사장 근처의 고급 주택에 사는 주민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G20 기간 동안 집을 비워 달라는 정부의 요청을 받았다고도 한다. 또 대기오염을 줄여 ‘푸른 하늘 만들기’ 프로젝트 일환으로 이 기간 동안 수 백 개의 공장이 휴업을 앞두고 있는 만큼 농민 공이라 불리는 노동자들 역시 항저우를 떠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뉴욕타임스(NYT)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중국 정부가 공공 안전에 대한 자신감 부족을 드러냈을 뿐 아니라 항저우 시민들의 일상 생활을 불편하게 하는 과도한 조치라고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 정부가 발끈했다. “이렇게 많이 모이는 큰 행사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큰 행사를 치르는 국가와 도시는 안보를 강화해 참석하는 귀빈들을 보호하는 게 국제적 규범이다”, “앞서 G20 정상회의를 개최했던 호주와 미국 등도 중국 못지않은 안전 조치를 취했다”고 관영 매체를 동원해 반박했다.


그러나 중국 당국은 밖에서뿐만 아니라 내부에서도 상당한 도전에 직면했다. 중국판 트위터라고 할 수 있는 웨이보(微博) 등 SNS에 항조우 보안 조치관련 황당한 유언비어가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용은 이런 것이다. “항저우 보안 검문소가 모 운전자에게 휴대한 20여병의 생수를 모두 열어서 한 모금씩 마셔보라고 요구했다”, “항저우의 식당, 야채 시장, 약국이 G20 정상회의 기간 영업을 중단해야 한다”, “항저우에서 G20 정상회의 기간 택배 수령이 안 된다” 등 등. 저장성 당국이 나서 이런 소문에 대해 조목 조목 해명하거나 부인했다.


과거 원칙적 내용만 되풀이 하거나 무대응으로 일관하던 입장에서 상당히 벗어난 모습이다 한 술 더 떠 우호적인 여론 조성을 하기 위한 생소한 조치까지 취하고 있다. 항저우 정상회의 회담장 주변 보안 검색 대에 길게 줄 선 시민들을 위해 '판다 복장' 차림의 경찰과 자원봉사자를 투입해 사진을 찍어주거나 도와주는 등 부드러운 분위기 조성에 나선 게 그 일례이다.

中 항저우 G20 미녀 순찰대 (사진=항저우웨이보청스)
中 항저우 G20 미녀 순찰대 (사진=항저우웨이보청스)
항저우 G20 정상회의 주변장에 배치된 '판다 복장' 경찰 (사진=연합뉴스)
항저우 G20 정상회의 주변장에 배치된 '판다 복장' 경찰 (사진=연합뉴스)

중국이 개혁 개방에 나선지 40년이 가까워졌다. 그 동안 중국은 초고속 경제성장을 거듭해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G2 국가로 굴기(?起)했다. 국제사회는 중국 당국에 G2에 걸맞은 행동과 모습을 요구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부 정책이라고 하면 불편하거나 다소 억울해도 큰 저항 없이 순종하던 중국인들이 중앙 통제식 과도한 정책과 조치에 불평과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경제발전과 뉴미디어의 확산에 따른 변화라고 할 수 있다.


항저우 G20 정상회의를 치르면서 중국 사회는 또 어떻게 변할까? 일사 분란한 정부 당국의 조치가 계속 될 수 있을까? 그 동안 정치적 안정성(political stability)이 확보돼 순조로운 경제성장을 이어가는 큰 요인이 점점 약화된다면 중국의 앞날은 어디로 향할까? 이번 항저우 G20 정상회의에 관심을 갖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이기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