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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중국과 '左派 오리엔탈리즘'

바람아님 2016. 9. 1. 10:56

(출처-조선일보 2016.09.01 이선민 선임기자)


이선민 선임기자미국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에 따라 한국과 중국의 긴장이 높아지면서 중국과의 관계를 놓고 
국내 여론이 갈라졌다. 
중국과의 우호를 중시하는 인사 가운데는 중국의 경제 보복이 한국에 미칠 타격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고,
중국의 심기를 거슬렀을 때 대북 억제와 남북통일에 차질이 빚어질까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사드 논란의 본질은 한국의 안보·대외전략과 관련한 '친중(親中)'과 '친미(親美)'의 노선 대결이다.
그런데 그동안 친중 노선을 추구해온 한국 좌파는 결정적 순간에 경제·남북관계론에 편승하며 초점을 
흐리고 있다.

'친중 좌파'는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중국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해 국제여론이 비판적인 가운데 중국 정부를 강력하게 옹호하는 사람은 영국 좌파 학자·언론인 
마틴 자크이다. 중국어로도 번역돼 불티나게 팔린 저서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2009년)에서 그는 세계의 수도가 
베이징으로 이동하는 것은 필연이라고 말한다. 
중국인은 민주주의보다 부국강병을 바라고, 중국의 소프트파워와 가치관이 서구 모델을 대신하여 세계인을 사로잡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앞서 이탈리아 출신의 좌파 사회학자 조반니 아리기는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2007년)라는 책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몰락을 점쳤고, 종속이론의 창시자로 유명한 좌파 경제학자 안드레 프랑크는 만년에 저술한 
'리오리엔트'(1999년)에서 중국으로 대표되는 아시아가 세계사의 중심으로 돌아온다고 일찌감치 예언했다.

좌파의 중국 사랑은 아시아가 더 뿌리 깊다. 
일본은 20세기 중반부터 저명한 중국문학 연구자 다케우치 요시미가 일본 제국주의와 그것을 낳은 맹목적 서구 추종을 
비판하면서 중국 혁명에서 '근대 초극(超克)'의 가능성을 찾았다. 
그를 잇는 중국사상사 연구자 미조구치 유조는 일본이 중국보다 우월하다는 통념을 비판하며 서구 중심의 근대관을 
넘어설 것을 주장했다. 
요즘에는 세계적인 문예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중국에서 '제국주의 아닌 제국(帝國)'을 발견했다고 설파한다. 
한국도 1970~80년대 젊은 층에 큰 영향을 미쳤던 고 리영희 한양대 교수가 중국의 공산혁명과 문화대혁명을 
인류사의 새로운 실험으로 극찬했다.

하지만 아시아 좌파의 친중 노선은 중국이 급부상한 후 오히려 난관에 부딪혔다. 
한국과 일본 좌파는 한·중·일 연대를 모색하지만 정작 중국은 한국·일본을 자신과 대등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들이 그냥 중국의 그늘에 들어오면 된다고 보는 것이다. 
동아시아론을 주장해온 한·일 좌파들은 "중국에 과연 아시아가 있느냐"고 볼멘소리를 내고 있다.

구미(歐美) 좌파는 서구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중국에 주목할 뿐 중국 자체나 동아시아와의 관계에는 관심이 없다. 
이를 중국사상 연구자인 조경란 박사는 '좌파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부른다. 
오리엔탈리즘은 편견에 근거해  동양을 실체와 상관없이 폄하했는데 좌파는 거꾸로 미국에 대한 반감에서 중국을 무조건 
높이는 것이다. 중국과 특별한 이해관계가 없는 구미 좌파는 그래도 된다. 
하지만 중국과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 한국은 다르다. 
"과거 중국의 조공국이었던 한국은 중국 주도의 신(新)조공질서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마틴 자크의 주장에 동의하는 
것인지 한국 좌파는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