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1.07.05 우정아 KAIST 교수·서양미술사)
팝아트를 대표하는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1923~ 1997)은 만화책을 베껴 그린 그림으로 유명하다. '꽝!'<사진> 역시 인기 만화책의 한 장면을 큰 캔버스에 유화로 옮긴 작품이다. 작가는 검은 윤곽선과 강렬한 원색, 말풍선과 정사각형 틀 등 만화의 포맷을 그대로 유지했다. 색면을 수많은 작은 점으로 분할하여 찍어내는 인쇄기법마저 그대로 모방하여 캔버스 위에 손으로 하나하나 촘촘히 점을 찍었다(일일이 손으로 쓴 게 아니라 반복적으로 구멍이 뚫려저 있는 판을 사용하였다는 얘기도 있다).
리히텐슈타인의 주요 작품 주제는 크게 로맨스와 전쟁으로 나뉜다. 만화책이 소녀용 순정만화와 소년용 전쟁만화 둘뿐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꽝!'은 용맹한 주인공이 마침내 적군을 물리치는 절정의 순간, 모든 소년이 손에 땀을 쥐고 열광하는 감동적인 장면이었을 것이다. 그 장면이 눈부신 조명 아래 세련되게 단장된 미술관 벽에 걸린 채, 많은 이들에게 가벼운 즐거움을 주는 미술품이 되었다.
우리는 이 앞에서 천문학적인 그림값을 이야기할지언정 진지하게 전쟁을 논하지는 않는다. 바로 이 순간,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전쟁이 벌어지고 있고, 많은 사람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더라도 말이다.
20세기의 베트남 전쟁이 'TV 전쟁'이었다면, 21세기의 아프간 전쟁은 '인터넷 전쟁'이었다. 수많은 이들이 컴퓨터 게임을 보듯 모니터 앞에 앉아 전쟁 구경을 했다. 어디선가는 실제로 끔찍한 전쟁이 일어나고, 다른 어디선가는 전쟁이 재밌는 오락거리가 되고, 또 다른 곳에서는 값비싼 미술품으로 거래되는 기이한 현상.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단적으로 보여주는 매스미디어 사회의 현실이다.
(참고 이미지)
Roy Lichtenstein, Whaam
Roy Lichtenstein, Blam(큰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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