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의미는 물론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누군가는 투쟁하듯 얻는 것이고, 누군가에겐 원치 않았는데 닥쳐버린 실존적 삶이기도 하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선 ‘혼자’를 부자연스럽고 비정상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일상으로 받아들일 줄 알게 됐습니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주류(27.2%)를 차지한 것도 그렇고 혼밥(혼자 먹는 밥), 혼술(혼자 먹는 술), 혼휴(혼자 보내는 휴가) 등 요즘 ‘혼자’는 익숙한 삶의 형태가 되고 있습니다. 트렌드에 민감한 TV에서도 ‘먹방’만큼이나 ‘나홀로 프로그램’이 대세로 자리 잡을 정도입니다. 혼자 살기는 그렇게 일상화되고 있습니다.
‘추석’처럼 가족들이 모이는 최대의 명절도 이런 ‘나홀로’ 대세는 피해 가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추석을 앞두고 고향에 가지 않을 핑곗거리가 되는 각종 페이크(fake) 사례들이 줄줄이 소개될 정도입니다. 추석 당직을 바꾼다든지 공부 핑계를 댄다든지 하는 고전적 방법부터 요즘은 아예 알리바이용 가짜 초대장을 내려받는 사이트도 있답니다. 추석 기간 중 열리는 것으로 꾸며진 국제회의 초대장을 내려받아 미리 부모님께 보여주고 가족모임을 피한다는 거죠.
‘가족’이 명절 스트레스의 진원지 혹은 기피의 대상으로 지목된 건 오래됐습니다. 한 결혼정보회사가 했다는 미혼남녀 설문조사를 보니 명절에 부담과 스트레스를 느낀다는 응답자가 10명 중 8명이나 됐고, 스트레스의 주범으론 가족의 잔소리가 가장 많이 지목됐습니다. 왜 가족들의 말은 잔소리가 되었을까요.
생각해 보면 가족은 핏줄을 나눴지만 공통의 화제가 가장 빈곤한 인간관계일 수 있습니다. 과거 농경사회처럼 똑같은 일을 하며 사는 것도 아니고 하는 일이 서로 다른 데다 장성한 형제들끼리는 사는 지역과 생활방식도 다르죠. 서로의 삶에 대해 잘 모릅니다. 모르는 사람끼리는 서로 간섭하거나 훈계하지 않는 것이 인간관계의 룰이지만 가족은 모르면서도 서로 안다고 착각하고 간섭하려다 보니 갈등이 증폭되는 건 아닐까요.
개인들은 사생활을 지키려는 개인주의 성향이 점차 강해지는데, 우리 전통적 가족주의 관점에선 그 사생활에 개입하는 것을 정(情)으로 보니 결혼·취업·자녀계획까지 꼬치꼬치 챙기는 것은 아닌지. 또 명절이면 집안일에서 성 역할이 확연해지고 가족 서열에 따라 훈계하고 가르치려는 가부장적 전통에 대한 강박이 되살아나곤 합니다. 이런 전근대적 가족주의의 망령이 따뜻한 가족관계를 만드는 ‘인간관계의 기술’을 익히는 노력을 방해해 가족들이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데 내 경우 홀로 지새운 고독함이 즐거웠던 이유 중 하나는 때때로 찾아오는 가족의 기억 때문이었습니다. 공연한 우울로 널브러졌던 사춘기의 어느 날 내 방에 초콜릿과 바나나 한 뭉치를 들고 와 “너, 다 먹어라” 하며 놔두고 갔던 엄마, 해산 직후 틈만 나면 달려와 내 옆을 빙빙 돌던 막내 동생. 대답할 수 없는 것은 묻지 않고 ‘무심한 관심’으로 내 결을 지켰던 가족의 기억으로 오늘도 버틸 만합니다.
사람은 따뜻했던 시절의 그리움 혹은 노스탤지어만으로도 어려움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고 심리학자들은 말합니다. 가족만이 그런 진한 노스탤지어를 만들어주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혼자 사는 삶은 더 보편화되고 우리는 많은 외로운 시간을 보내야 할 겁니다. 역설적으로 가족의 힘이 더 필요한 시간들. 이번 추석은 잔소리 대신 가족에게 따뜻한 기억 한 가지를 보태주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즐거운 추석명절 되십시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