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영 시인, 예술원 회원
완공된 지 이미 수년이 지난 새 노선의 경춘선 열차를 나는 최근에야 비로소 타 볼 기회를 가졌다. 엊그제 춘천에서 열린 어떤 문학 행사에 참여할 일이 생겨서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달리는 케이티엑스와 대비해서 아이티엑스로 불린다고 했다. 우선은 서울의 용산역에서 남춘천역까지를 불과 한 시간여 만에 달리는 그 속도감에 놀랐다. 그리고 말끔하게 지어진 새 역사도 좋았고, 잘 갖추어진 편의시설도 그랬다….
추억 속의 경춘선, 그 얼마나 우리 젊은 날의 가슴을 설레게 하던 철도 이름이었던가. 학창 시절, 서울의 청춘들치고 경춘선 한번 타 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드물었을지 싶다. 학과 단합대회나 동아리의 엠티에 참여하기 위해, 북한강의 그 반짝거리는 은빛 모래밭에서 하루나 이틀 캠핑을 하기 위해, 아름다운 호반의 도시 춘천의 물안개에 묻혀 사랑하는 사람과 단둘이 밀어를 속삭이기 위해, 아니 그냥 한번 무작정 타 보기 위해…. 그렇다, 아무 일이 없어도 ‘무작정’ 그냥 한번 타보고 싶은 충동이 일곤 하던 열차가 경춘선이 아니던가.
그 시절의 경춘선 열차는 고물이었다. 철로도 요즘처럼 직선이 아니고 굽이굽이 산등성이를 돌았다. 속도를 낼 때마다, 커브 길을 돌 때마다 바퀴 덜컹거리는 소리가 요란했다. 좌석이 붐벼 통로에 서서 가는 것이 예사였다. 탐승 시간도 길어 청량리역에서 춘천역까지 두 시간 이상이나 걸렸다. 그러나 그때는 누구 하나 이런 상황을 불평하거나 투정하는 사람이 없었다. 지루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느 먼 미지의 나라에 여행을 떠나듯 들뜬 가슴들뿐이었다. 비록 열차는 누추했다 하더라도 아름다웠고 차내는 혼잡스러웠으나 즐거웠다. 승객 또한 빠른 속도는 아니었지만 별로 시간 가는 줄을 몰라 했다.
왜 그랬을까? 그 시절의 우리 마음이 지금처럼 각박하지 않아서 그랬을지 모른다. 다른 교통수단에 비해 그나마 철도가 좀 편해서 그랬을지 모른다. 지금처럼 자가용 승용차가 보편화하기 이전이어서 불편을 불편으로 여기지 않던 우리의 전근대적 생활 방식 때문에 그랬을지 모른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삶의 정감이 그때는 아직 살아 있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때 그 열차가―최소한 한국의 경우에서만큼은―오늘의 그것보다 더 ‘인간적’이었다는 사실이다. 우선, 철도든 도로든 그 시대의 모든 길은 빨리 가기 위해 억지로 직선을 고집하지 않았다. 산이 있으면 굽이굽이 산기슭을 돌고, 강이 있으면 강변을 유유히 타고 달렸다. 산을 깎아 허물고 터널을 뚫어 작위적으로 직선을 내지 않았다. 거리를 단축하기 위해 오늘날처럼 같은 강이라도 굽이도는 곳마다 매번 다리를 놓지도 않았다. 자연 친화적이었다고나 할까?
평지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 생김새대로 좀 낮은 곳은 낮게, 좀 높은 곳은 높게 침목을 깔았다. 좀 험하다 해서 덜렁 높은 육교를 놓아 열차가 그 위를 아슬아슬하게 홀로 달리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마을을 지나칠 때도, 도시를 관통할 때도 오늘의 철도처럼 진행하는 방향의 좌우 양옆으로 높은 차단벽을 설치해서 경관을 아예 막아버리지도 않았다. 모든 길은 경계가 개방되고 시원히 트여 있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을 빌리자면 열차와 마을, 승객과 주민, 철로와 산천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이었다. 여기에다 세계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북한강 유역과 접목하여 굽이굽이 수십 리를 뻗어 있는 철길이었으니, 이를 감상하면서 달리는 여정 또한 어찌 즐겁고 황홀하지 않을 수 있었으랴.
아, 그런데 10여 년 만에 타 본 우리의 새로운 경춘선은 예전의 그것과 사뭇 달랐다. 물론 속도를 내기 위해서, 탐승 시간의 단축을 위해서 철길을 일직선으로 낸 것만큼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정없이 깎고, 허물어 토막 낸 산과 계곡, 연속되는 터널과 콘크리트 육교는 어찌할 것인가. 평지에 들어 무언가 좀 경치를 완상할라치면 거칠게 뛰어드는 방음벽·차단벽들이 시야를 막아버리고, 또 한숨을 돌려서 창을 내다볼까 하면 득달같이 좇아온 터널들이 온통 온몸을 어둠으로 묶어 버린다. 그런 상황에서 객실이란 기실 꼼짝 없는 교도소 감방의 신세와 다를 바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 시대 우리 사회의 가치관을 가장 단적으로 내보여주는 한국철도, 코레일의 민낯은 객실의 좌석 배열에 있으리라 생각한다. 승객 하나라도 더 태우려는 얄팍한 술수에서 그리했겠지만, 좌석과 좌석의 거리를 극도로 좁혀 설치한 것이 그 하나의 예다. 그 결과 객실 내 어떤 좌석들은 창과 창 사이의 벽면에 자리하게 되어 아예 바깥 풍경 자체를 내다볼 수 없게 만들어 놓아버렸으니 도대체 이 세계의 그 어떤 문명국 열차의 객실 풍경이 이렇겠는가. 그래서 나같이 열차를 타든 버스나 비행기를 타든 창가에 앉아 자연과 사람과 문화에 대해 조용히 명상 또는 소통하고 싶은 사람은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을 가졌다는 죗값 하나만으로 열차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꼼짝없이 교도소에 갇힌 수인의 신세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은 무시해도 된다는 통념, 한 푼이라도 이윤을 더 취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고객들을 쥐어짜야 한다는 발상, 시간은 돈이니 무엇이든 무작정 빨리빨리 해치워 버려야 한다는 생각, 물질적 이득을 위해서라면 그까짓 자연환경이란 좀 훼손해도 크게 문제 되지 않으리라는 판단 등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 내린 빨리빨리 국민성을 코레일에서 집약적으로 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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