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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여름 山寺에 두고 간 세상 걱정

바람아님 2016. 9. 7. 23:33
조선일보 : 2016.09.07 03:11

"모든 생명은 고통을 싫어한다" 연민 강조하는 달라이 라마 말씀
직장에서 직원은 서로 은인 관계
상대의 손을 내 손처럼 아낀다면 그곳은 환희에 찬 천상의 세계
이후의 삶도 수많은 가능성 열려

금강 스님·미황사 주지 사진
금강 스님·미황사 주지

지난주 티베트 난민들이 거주하는 인도 다람살라를 방문했다. 세계적인 정신적 스승 달라이 라마가 개최하는 '아시아인을 위한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떠나기 전에 티베트 관련 영화를 본 덕분인지 만나는 사람들이 더 정겨웠다. '브링홈, 아버지의 땅'이라는 영화로, 티베트 난민이면서 세계적인 화가가 된 빅돌이라는 남자의 이야기다.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전에 가보고 싶어 했던 티베트에서 흙 20t을 2000㎞가 넘는 이곳 다람살라까지 17개월에 걸쳐 가져오는 내용의 다큐영화다.

다람살라에 거주하는 티베트 난민은 모두 온갖 위험을 겪으며 국경을 넘어 달라이 라마가 세운 티베트 망명정부까지 찾아온 이들이다. 빅돌이 가져온 흙처럼 그곳 사람들은 순박했다. 누구 할 것 없이 눈길만 마주쳐도 환하게 웃는다. 달라이 라마는 "70억 인류가 모두 행복을 원하고 불행을 원하지 않는다. 사람뿐 아니라 짐승들까지도 그렇다. 서로 연민의 마음으로 아끼고 베푸는 마음을 내어야 한다. 분노와 증오의 마음을 가지면 사람의 면역체계 또한 큰 변형이 이루어져 건강을 해치게 된다. 이는 가정과 사회, 국가 모두에게 해당한다"는 법문을 했다. 21세기는 문명사적으로 가장 편리해진 세기이지만 대립하고 갈등하는 세력 사이의 골은 여전히 깊기만 하다. 서로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간직하고 서로 존중하며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산사(山寺)에 살면 숲에 노니는 새들도 어느새 가족이 된다. 지난여름 한문학당 아이들이 찾아왔을 때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도 덩달아 높아졌다. 아이들이 찾아오면 나는 춤추듯 발걸음이 경쾌해지는데 새들도 절로 분위기를 알아 덩달아 그러는 듯하다. 8일 동안 묵언하고 참선하는 이들이 좌복에 거룩하게 앉아 있을 때 들려오는 새들 지저귐의 음색은 그렇게 청아하고 고요할 수 없다. 장기간 쉬려고 수행프로그램을 신청했다가 예상외의 빡빡한 참선 일정에 망설이는 이들이 있다. 그때 맑은 새소리가 들려와 편안해지고 행복해졌다는 소감을 말하는 이가 꽤 많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더위가 가실 줄 모르더니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상큼한 가을바람이 분다. 이즈음 새벽이면 행자의 도량석 목탁 소리보다 청아한 새들의 노랫소리가 먼저 들린다. 이른 새벽부터 울려 퍼지는 저 새들 노랫소리는 산사의 손님들에게 상쾌한 선물이 되어 줄 것이다.

여름 내내 많은 사람이 다녀갔다. 푹 쉬었다가 가기도 하고,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기도 하고, 지혜를 얻어가기도 한다. 하산하면서 그들은 이런 걱정을 털어놓는다. "이곳에서는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가득했는데 집과 직장으로 돌아가면 다시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야 하니 무섭습니다."

지난달 서로 모르는 은행지점장 세 명이 동시에 산사를 찾아왔다. 그들은 지점장이 되고 보니 고민이 많아졌단다. 평직원일 때는 자기 일만 하면 됐지만 책임지는 자리에 앉아보니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실수를 하면 자신의 자리를 누군가에게 빼앗길 것 같은 불안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5년쯤 뒤엔 퇴직하게 되지만 그래 봐야 50대 나이인데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라고도 했다.

이런 생각으로 산다면 하루하루가 지옥에 사는 듯 고통스러울 것이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과 말투까지도 신경 쓰는 삶은 칼날 위에 서듯, 곡예사가 외줄을 타듯 불안하다. 함께 근무하는 직원들도 상사가 나의 말투까지 살핀다고 생각하면 그 또한 고역일 것이다. 화기애애하고 행복한 직장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하면 사실 그곳은 서로서로 돕고, 함께 매 순간을 만들어 가는 가장 소중한 공동체의 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모든 일을 혼자 할 수는 없다. 비록 분업화·전문화되어 있지만 각자의 역할을 성실히 해주기 때문에 공동체가 굴러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서로가 서로에게 은혜를 입고 입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모든 직원이 서로 은인 관계다. 서로 은인으로 대하고 상대의 손을 나의 손처럼 아낀다면 그곳은 곧바로 천상의 세계처럼 환희에 차고, 행복한 곳이 되는 것이다. 이후의 삶 또한 수없이 많은 가능성이 열릴 것이다.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처럼 "모든 생명은 고통을 싫어한다. 사랑과 연민을 키워 함께 살아야 한다." 어머니의 사랑이 자식에게 무한하듯 그 마음이 함께 있는 사람과 환경으로 확대되면 저절로 얼굴에는 미소가, 마음에는 평화가 가득할 것이다.


금강 스님·미황사 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