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손자 준철아!
생오지 할아버지 집 마당에 배롱나무꽃이 꽃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었다. 한 나무에서 세 번 꽃이 피었으니 이제 곧 햅쌀밥을 먹을 수 있겠구나. 올여름 유난히 햇볕이 뜨거워서인지 진분홍 꽃 빛깔이 한껏 붉은 것 같다. 어느덧 소슬한 바람에 벚나무 낙엽이 날리는 것을 보니 성큼 가을이 왔나 보다. 오늘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배롱나무꽃을 바라보며 네 이야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는 자식들을 욕심으로 키웠는데, 손주들은 희망으로 바라보며 살게 된다”는 할머니 말씀대로, 너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행복이고 희망이 되고 있단다.
2년 전, 네가 5학년 때 할아버지는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네게 물었지. 그때 너는 “이대로 있고 싶어요. 지금이 행복해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요” 하고 거침없이 대답했었다. 너는 고3인 누나가 새벽에 나가 밤늦게 지쳐 돌아오는 것을 보면서, 나이를 먹고 어른이 되는 과정이 너무 버겁다는 것을 알아차렸겠지. 그러면서 너는 “축구 선수가 되고 싶은데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아요” 하고 탄식했다. 축구를 해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너는 이미 어린 나이에도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 중이었다.
그 무렵, 너는 싱가포르 어린이 축구대회에 출전할 만큼 축구를 잘했지. 그러던 네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달라졌다. 축구를 포기한 너는 밤늦게까지 학원에 다니며 공부에 열중했다. 여름방학인데도 학원에 다니느라 몹시 지쳐 있는 네게 “꿈이 뭐냐”고 다시 물었지. 너는 “엄마는 좋은 대학에 가서 아빠처럼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것 같아 고민이에요” 하면서 엄마가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속 편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할아버지는 네 효심이 기특하면서도 그런 네가 애잔해 오목가슴이 싸하게 아렸단다.
준철아!
엄마가 원하는 삶과 네가 좋아하는 삶은 다를 수 있단다. 그리고 아직 네 꿈은 작은 씨앗에 불과하다. 네 꿈이 더 커질 때까지 기다려보려무나. 꿈과 취미는 다르단다. 네가 더 자라서 네 기질이 더욱 뚜렷해지면 네 꿈도 달라질지 모른다. 그때가 되면 네가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해서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무엇이 되느냐보다는,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네가 알아야 할 것은, 꿈을 꾸는 사람과 꿈을 포기한 사람의 삶은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꿈을 포기한 사람은 비록 성공해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지만, 꿈을 품고 사는 사람에게는 노력한 만큼 행복이 찾아온단다.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성공해서 좋은 직업을 가진다고 그 사람이 과연 행복할까. 성공이 곧 꿈을 이루는 것은 아니란다. 진정한 꿈은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이 아니라, 남과 더불어 잘사는 삶이란다.
너도 언젠가는 어른이 되어 네 가족을 배에 태우고 노를 저어 강을 건너게 될 것이다. 그러니 네 의지대로 네가 갈 길을 선택하고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선택은 찬스이고 인생에 도움을 주는 기회는 일생에 몇 번밖에 없다. 네가 선택한 것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면 후회가 없다. 그렇지만 지금은 햇살처럼 밝고 건강한 모습으로 친구들과 어울리며 활기차게 살았으면 싶다. 공부에 지친 너를 보면 마음이 아프다.
할아버지가 네게 몇 가지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독서를 게을리하지 마라. 지난해 여름방학 때만 해도 너는 방학 동안 30권의 책을 읽겠다고 약속했고 약속을 지켰지. 독서를 하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독서를 하면 네 꿈을 찾을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꿈을 찾아줄 수가 있단다.
꿈을 이루고 살자면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하지만 네가 이겨낼 수 있을 만큼만 욕심을 부리거라. 지나친 욕심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갖고 싶은 것을 다 가지려고 하지 말고 꼭 필요한 것만 갖도록 하거라. 네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던가, ‘반지의 제왕’에서 골룸이 왜 그렇게 무섭게 생겼느냐고 물었었지. 그때 할아버지가 골룸은 원래 호빗족의 착한 인격자 스미골이었는데 권능의 상징인 반지를 갖고 싶어 한 후로는 욕심 때문에 사악한 괴물이 된 것이라고 했었지. 이렇듯 지나친 욕심은 사람을 괴물로 만든단다. 이 세상에는 욕심 때문에 괴물이 된 사람이 너무 많단다.
사랑하는 준철아!
너는 할아버지가 멀리 떨어진 시골에 사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언젠가 너는 “할아버지 할머니는 왜 우리와 떨어져 시골에 살아요?” 하고 심각하게 질문을 했지. 그 이유는 지금 설명하기 어려우니 커 가면서 너 스스로 알기를 바란다. 지구 환경은 갈수록 더 나빠져서 황폐될 것이고, 네가 할아버지 나이 때쯤 되면, 사운드 스케이프 세상, 즉 자연이 살아 있는 생태적 삶을 그리워할 것이다. 어쩌면 할아버지는 그때 네가 돌아와 할아버지 시간 속에서 건강하게 인생을 즐길 수 있는 터전을 만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삶에 지칠 때는 할아버지가 너를 위해 가꿔 놓은 깊은 골짜기 마을 생오지가 있다는 것을 생각해라.
사랑하는 내 손주 준철아!
추석이 다가오니 네가 기다려지는구나. 올 추석에는 너를 볼 수 있겠지? 이제는 너를 기다리는 것도 우리에게 큰 희망이 되고 있단다.
문순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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