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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 '독섬'은 어떻게 '독도'가 됐을까

바람아님 2016. 9. 25. 23:53
연합뉴스 | 2016/09/25 10:02

신간 '슬픈 우리 땅이름'

대한제국이 선포되고 3년이 흐른 뒤인 1900년 울릉도는 울도군으로 승격됐다. 당시 관보를 보면 울도군에는 '石島'(석도)라는 섬이 포함됐다. 그리고 1906년 울도군수 심흥택은 강원도 관찰사에게 보낸 보고서에서 이 섬을 '獨島'(독도)라고 썼다.

이 섬을 오늘날에는 '독도'라고 일컫는다. 하지만 100년 전 사람들은 이 섬을 '독섬'이라고 불렀다. 한글 대신 한자로 지명을 기록한 조선시대에는 섬의 한자어인 '島'(도)를 모두 섬이라고 했다. '울릉도' 역시 '울릉섬'이었다.


국립중앙도서관 고서전문원인 이기봉 학예연구사는 신간 '슬픈 우리 땅이름'에서 불과 100년 사이에 급격하게 변한 우리나라의 지명을 살핀다. 그는 우리나라가 중국의 뜻글자인 한자를 빌려다 썼지만, 말은 달랐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에 한자음 그대로 읽는 습관이 보편화하면서 순우리말이었던 지명이 대부분 변화를 겪었다는 것이다.


독도. [연합뉴스 자사진]

그렇다면 '독섬'은 어떤 의미이고, 왜 '獨島'와 '石島' 등 두 가지 한자어로 표기했을까. 독섬은 돌이 많은 '돌섬'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배를 타고 독도를 바라보면 평지는 거의 없고 바위만 눈에 띈다.


그런데 돌을 전라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는 '독'이라고 부른다. 이 학예사는 1960년대 한글학회가 전국의 지명을 체계적으로 조사해 간행한 '한국지명총람'에서 '독'을 돌과 같은 뜻으로 쓴 지명 319개를 찾는다. 그러고는 이 지명이 있는 곳들의 위치를 조사해 전라도 지방이 78.7%에 이른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예컨대 강진 군동면의 지명 '독다리'는 돌다리를 의미한다.

저자는 울릉도가 개발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 섬 주민의 출신 지역도 분석한다. 1882년 이규원이 울릉도에 12일간 체류하며 작성한 '울릉도검찰일기'를 보면 주민 140명 중 전남 흥양(현 고흥군)과 순천 낙안 출신이 115명으로 전체의 82.1%를 차지한다.


그는 울릉도에 많았던 전라도 사람들이 '돌섬'을 사투리인 '독섬'이라고 불렀고, 이를 '獨島'(독을 한자음으로 그대로 옮긴 경우)와 '石島'(독의 뜻을 찾아 한자로 옮긴 경우)라고 병기했다는 결론을 내린다.

독도 외에 서울 시내의 지명 이야기도 흥미롭다. 광화문에서 서대문으로 향하는 길에는 여전히 '새문안'이라는 지명이 들어간 길과 교회가 있다. 여기서 새롭게 지은 문이라는 뜻의 '새문'은 한양도성의 서대문인 '돈의문'을 지칭한다.


이 학예사는 이처럼 고유한 의미가 있었던 전국의 지명을 옛 문서, 지도와 비교해 고루 소개한다.

저자는 "우리의 오랜 역사와 삶을 담고 있는 땅이름이 아무런 문제 제기도 없이 그냥 사라져 가는 것을 지켜만 보는 것에 자존심이 상한다"며 "일부 지명이라도 옛날로 돌아가길 기대한다"고 말한다.

새문사. 312쪽. 1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