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금융시장이 도이체방크 파문에 출렁거리고 있다. 지난달 미국 법무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전 주택저당증권(MBS) 부실판매에 대한 벌금으로 이 은행에 140억 달러(약 15조원)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확정된다면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이후 벌금액을 54억 달러(약 6조원)로 줄이는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는 설, 독일 정부가 구제금융을 투입할 것이라는 설 등이 나오며 이 회사는 물론 전 세계 증시와 채권시장이 일희일비하는 중이다.
146년 역사의 도이체방크는 독일 최대이자 세계 최대 투자은행(IB) 가운데 하나다. 올해 세계 6위로 밀려났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3대 은행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다. 10년 전엔 자산 기준 세계 최대 은행 자리를 넘봤다. 지금도 전 세계 70개국에서 10만 명을 고용하고 있는 ‘금융공룡’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스캔들과 경영부진의 늪에서 허우적대며 ‘금융시장을 위협하는 폭탄’이 돼 버렸다. 지난해 4월 런던은행간금리(리보·LIBOR) 담합 혐의로 미국과 영국에 25억 달러(2조8000억원)의 벌금을 물었다. 올 초엔 이 은행이 조건부 전환사채(코코본드) 이자를 줄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며 유럽 증시가 급락했다. 지난해 기록적 손실을 기록해 주가는 역대 최저 수준을 헤맨다. 앞으로 환율조작 혐의에 대한 벌금까지 물어야 할 처지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이 은행을 지목해 “세계에서 가장 리스크가 높은 은행”이라고 평가했다. 덩치가 경쟁력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되새길 수밖에 없다.
도이체방크가 위기에 빠진 이유는 여러 가지다. 제로 금리를 넘어 마이너스 금리가 확산되면서 은행들이 예금과 대출로 수익을 내기 어려워졌다. 투자은행(IB) 부문에 대한 주요 국가의 강력한 규제로 돈 벌 곳이 줄어들었다. 모바일과 정보기술(IT)이 발전하면서 작고 민첩한 은행들의 도전이 거세졌다. 그런데도 도이체방크를 비롯한 거대 은행들은 시장 독점력에 안주하며 관료주의적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달라진 시대에 맞춰 변신하지 못한 굼뜬 거인의 실패다.
이런 일이 국내 은행에서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한국의 인터넷·모바일 뱅킹 비중은 세계 최고다. 은행원의 얼굴을 볼 필요가 없는 비대면 거래가 급속히 늘고 있다. 지점은 물론 현금자동입출금기(ATM) 이용까지 줄고 있는 실정이다. 인터넷은행이 곧 등장할 만큼 시장 자체가 바뀌고 있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은 적응이나 혁신 대신 현실에 안주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상 최저 금리에 기대어 박리다매형 주택담보대출에 의존하는 영업행태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금융노조는 얼마 전까지 성과연봉제 반대를 내걸며 파업을 결행했다. 너도 나도 단기 실적과 자기 밥그릇만 챙길 뿐 금융산업의 생존과 국가경제의 미래를 고민하지 않는다. 세계 최고 은행 중의 한 곳인 도이체방크의 추락을 ‘강 건너 불’로 여기는 것인가. ‘우물 안 개구리’ 한국 금융이 ‘냄비 속 개구리’가 될까 걱정이다.
[중앙일보]
입력 2016.10.03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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