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에서 ‘감성으로 행복 찾기’라는 인문학 강연을 했다. 100명 남짓 모인 자리에서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더니, 겨우 12명에 불과한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앞길이 창창하고 미래 한국을 이끌어갈 대학생 중에서 10%만이 행복하다니, 나머지 90%는 불행하다는 말인가….
행복한 이유를 묻자 “미래의 꿈이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고, 왜 불행하냐는 질문에는 “졸업 후가 암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대학생들에겐 취업이 낙타가 바늘구멍 뚫기만큼 어려운 현실에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 중에는 취업은 물론 결혼, 자녀, 내 집 갖기조차 포기한 ‘프리터족’(free arbeiter)이 늘어난다고 한다. 평생 직업을 갖지 않고 아르바이트로 월 100만 원쯤 벌어 자유롭게 혼자 사는 것을 말한다. 이들은 꿈이 없기에 불행할지도 모른다.
더 충격적인 예도 있다. 올봄 어느 잡지사에서 조사한 것을 보면 ‘나는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대한민국 국민은 5%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유엔이 발표한 2015년 한국민의 행복지수는 세계 54위였다. 왜 이렇듯 우리나라 사람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결핍증(缺乏症) 때문일까? 따지고 보면 6·25전쟁 이후, 보릿고개 등 궁핍한 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걸신(乞神)들리듯 돈에 허기를 느꼈다. 가져도 가져도 더 갖고 싶은 끝없는 욕망. 그 욕구가 충족되기까지는 늘 결핍을 느끼며 살았다.
그런가 하면 또 산업사회 이후에는 과잉 노동으로 피로에 지쳤다. 한병철의 ‘피로사회’라는 책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속도주의 문화 때문에 국민의 80%가 피로에 지쳐 있다고 했다. ‘일하는 기계’로 전락한 한국 사람들은 거의 번아웃증후군(Burnout syndrome)에 걸린 환자들일지도 모른다. 무기력증과 자기혐오에 성취감도 느낄 수 없고 짜증과 우울증에 휩싸여 있으니, 행복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문학청년이었으나 생계를 위해 시작(詩作)을 포기했다가 정년퇴직 이후 시인이 된 한 후배는, 평생에 30대 후반과 60대 후반, 딱 두 차례 행복을 느꼈다고 했다. 결혼해서 토끼 같은 아이들 키우고 직장에서 승진하기 위해 열심히 일했던 때와, 비로소 가족 부양의 짐을 벗고 자신을 위해 자유롭게 살면서 자아실현의 꿈을 성취한 60대 후반 무렵에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이다. 후배는 생계를 위해 살 때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는데 꿈을 이루기 위해 살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행복을 위해 산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르네상스 소사이어티’를 쓴 롤프 옌센은 “물질이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열심히 돈을 벌었으나, 지금 우리는 행복하지 않다”면서, 진정한 행복을 위해 ‘탈물질주의(脫物質主義)’를 강조했다. 하기야 1인당 국민소득이 6만8000달러가 되는 싱가포르의 행복지수는 100위 이하인 반면, 1500달러밖에 안 되는 부탄은 5위 안에 든다. 더욱이 지금은 많은 것을 갖지 않고 최소한의 것으로 행복하게 사는 것을 실천하는 미니멀 라이프 시대가 아닌가.
물질적 행복을 추구하다가 파멸의 길을 선택한 사람도 많다. 얼마 전 양진영이라는 작가의 소설 ‘슛유’를 읽었다. 행복지수 5위 방글라데시 여인이 행복을 찾아 행복순위 54위인 한국에 왔다. 공장에 취업한 그는 성폭행을 당해 딸을 낳는다. 성인이 된 그 딸은 엄마처럼 불행하게 살지 않겠다며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취업을 못 하고 전전하다 핍 쇼걸 (peep show girl)이 된다. 어느 날 흑인 남자가 자신을 거칠게 다루자, 슛 유(suit you·당신을 고소할 거야)라고 발음해야 하는 것을, 슈트 유(shoot you·당신을 쏴버릴 거야)라고 발음했고, 이에 놀란 흑인이 권총을 쏴 여인이 죽고 마는 슬픈 이야기다.
서정주 시인은 ‘가난이야 한갓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노래했다. 행복과 불행은 정신적인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 오래전에 본 영화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을 보면, 행복은 돈으로 살 수 없으며, 행복의 원천은 가족, 그리고 살아 있음이며, 행복은 미래가 아닌, 지금 눈앞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행복은 소소한 일상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좋은 아파트, 좋은 차를 샀을 때 행복하겠지만, 가족이 함께 밥을 먹는 것,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 좋은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것, 아름다운 새소리와 꽃을 보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며칠 전 면 소재지 우체국에 가서 짜글짜글 주름진 얼굴에 행복이 가득한 시골 할머니들을 만났다. 고구마, 고추, 옥수수, 감, 밤, 가지, 호박 등 농사지은 것들을 도시에 사는 자식들에게 보내기 위해 박스며 자루에 담아 가지고 나온 할머니들….
“자식들한테 보낼 생각을 허면 농사짓는 것이 하나도 고단허지 않고 영판 행복해라우.”
동복댁 할머니는 벌레 먹은 햇밤은 남겨두고 성한 것들만 골라 보낸다면서 행복하게 활짝 웃었다. 행복은 사랑과 베푸는 마음속에 깃들어 있음을 깨달았다. 오늘 아침, 늙은 아내가 아픈 허리 두드려가며 밥을 지으면서 “그래도 밥 차려줄 영감이 있으니 행복하다”고 하는 말에, 나 또한 뜬금없이 간질간질한 행복에 젖었다.
이렇게 두 사람이 식탁에 앉아 눈빛 주고받으며 살다가, 이 중 하나가 사라진다면 삶이 얼마나 삭막할까.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오늘 이 순간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살아 숨 쉬는 내 눈앞에 있음을 절감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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