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지평선] 파랑새는 없다

바람아님 2016. 10. 11. 00:09
한국일보 2016.10.09. 20:02

1906년 프랑스 극작가 모리스 메테를링크의 아동극 ‘파랑새’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행복은 무엇이며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를 알아가는 게 주제다. 주인공 남매 틸틸과 미틸이 파랑새를 찾아 헤매지만, 결국 집안 새장에서 파랑새를 찾는다는 줄거리를 통해 행복은 먼 곳이 아닌 가까운 곳에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하지만 파랑새는 손에 넣는 순간 색깔이 변하거나 죽지 않으면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토록 애타게 추구하는 진정한 행복은 꿈꾸고 소망하는 것일 뿐, 결코 손에 잡을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 1997년 KBS2TV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는 차력사, 창녀, 무명가수, 사기꾼 등 서민들이 등장해 일상의 행복을 찾아가는 삶의 애환을 그렸다. 이 드라마는 당초 ‘파랑새는 없다’였으나, 제목이 부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국 고위층이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파랑새 증후군(bluebird syndrome)은 현재의 일에는 흥미를 못 느끼고 막연하게 미래의 계층상승만을 꿈꾸는 병적인 증상을 뜻한다. 한 직장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니면서 방황하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을 빗대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 사법시험 합격은 한 때 ‘개천에서 용 나는’ 계층상승의 상징이었다. 가난한 시골 출신 학생도 사법시험만 붙으면 판ㆍ검사가 되고, 이후 정치적으로도 출세할 수 있는 신분상승 통로가 됐다. 사법시험이 권력과 명예와 부를 한꺼번에 거머쥘 수 있는 파랑새였던 셈이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최근 사법시험 폐지를 합헌으로 결정했다. 고시생들은 “계층 이동 사다리를 걷어찬 결정”이라고 반발한다. 하지만 일각에서는“법률가가 되는 게 신분을 상승시키고 권력을 잡는 사다리가 돼서는 안 된다”고 반박한다.


▦ 부의 쏠림 현상으로 사회 양극화가 심화하면 계층이동이 어려운 ‘닫힌 사회’가 된다. 미국, 유럽에서도 금수저와 흙수저의 구분이 점점 뚜렷해지는 신분 고착화 현상이 두드러진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최근 전국 성인 1,009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계층 이동 가능성이 높다’는 응답은 15.8%에 불과했다. ‘계층 이동 가능성이 낮다’고 답한 비율은 전체의 44%, 나머지 40.2%는 ‘중간 수준’이라고 답했다. 특히 충청ㆍ호남권의 생산직 대졸 30대 남성들의 좌절감이 컸다. 그들의 파랑새는 어디에 있을까.


조재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