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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혼자서도 잘 살아(볼래)요 ① 독거의 시작

바람아님 2016. 10. 9. 23:35
SBS 2016.10.09. 10:35


지금 한국에서 가장 흔한 가구형태는 ‘1인 가구’입니다. 지난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5 인구주택총조사’를 보면 1인 가구가 520만 3000가구로 전체(1911만 1000가구)의 27.2%를 차지했습니다. 2인 가구(26.1%)를 제치고 이른바 ‘대세’가 된 겁니다. 1인 가구의 삶이 곧 대한민국의 보통 삶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오늘, 초보 1인 가구에 막 합류한 30대 총각 기자의 혼자서도 잘 살아보려고 애쓰는 일상을 매주 일요일에 연재합니다.
 
난감했다. 간밤에 비를 맞은 창틀은 물이 고여 찰랑였다. 보일러를 켜니 온수공급관에서 분수가 솟는다. 나이 서른 넘어 시작한 독거의 처음이 이랬다. 패션지에서 보던 정규직 근로소득자의 화려한 싱글라이프 같은 건 역시 현실에 없었다. 잔금까지 치르고 발견한 이 하자를 어째야 하느냐는 냉엄한 고민에 아득했다.
 
검색창을 뒤졌다. 전국 783만 임차 가구가 저마다의 난처함을 드러내고 있다는 게 그래도 위안이었다. ‘소송을 하세요. 단, 계약기간 전에 결론 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냥 보일러 제조사에 물어 스스로 온수공급관 패킹을 다시 했다. 집주인이 창틀을 고쳐준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방을 얻어 나와 살게 됐다는 보고(?)에 부장이 한 말이 떠올랐다. “네가 그 말 많고 탈 많은 1인 가구가 됐구나”
 
따지고 보면 혼자 집 구하기 부터가 보통 일이 아니다. 짬을 내 방을 보러 다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고작 두 세집 돌아봤을 뿐인데 훌쩍 반나절이 흘렀고 기진하기 일쑤였다. 어렵사리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해도 전세대출에 동의해줄 수 없다는 주인 말에 허탈하기도 했다. 어느 집주인은 분명 전세라기에 찾아 갔건만 월세를 얼마간 달라는 식의 딴소리를 했다.
 
은행에서 나를 증명해야 하는 것도 열없기 짝 없는 일이다. ‘아, 저는 돈 떼먹을 사람은 아닙니다.’ 사방이 트인 공간에서 생면부지 은행원한테 소득이 까발려진다. 평생 구경해본 적 없는 큰돈을 서류상으로만 확인하고, 그 ‘숫자’가 집주인에게 이전되는 경제를 체험하기에 이를 땐 가슴이 쿵쾅거려 혼났다. 언뜻 ‘어른’이 됐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2년 뒤 저 돈을 못 돌려받으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더 컸다.
 
그렇게 구한 전셋집이 이른바 ‘빌라’다. 본디 유럽 교외의 대지에 세운 정원 딸린 고급주택을 일컫는 말이었다는데, 이 땅에선 그냥 공동주택의 위계를 세워 아파트 아래로 치는 다세대주택을 이렇게 통칭하는 모양이다. 강이나 산이 보이는 ‘뷰’ 같은 건 따로 없다. 창문을 열면 거대한 교회 벽이 있을 뿐. 살며 힘들 땐 가끔 하늘을 보라지만 하늘은커녕 새벽 찬송에 맞선 수면 사수가 급선무다.
 
집터는 본래 택시회사 차고지였다고 한다. 주위엔 자동차공업사도 많고, 이런저런 영세 공장들이 경제 삭풍을 견디며 오늘도 기계를 돌린다. 요즘 매체는 이런 곳을 ‘변신 중인 준공업지역’이라 소개하기도 한다. 그 변신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진 모르겠다. 다만 공장이 쇠락한 자리엔 폐공장 인테리어를 활용한 카페가 들어섰고 계산 빠른 땅주인들은 저금리 시대를 맞아 빌라와 원룸을 올렸다. 이런 공간을 채우는 게 대체로 아파트 입주가 난망한 나 같은 1인가구다.
 
바야흐로 1인가구의 시대란다. 그 수가 520만을 헤아리며 ‘대세’가 됐다지만 고민은 깊다. 치솟은 주거비에 월급 대부분은 통장을 스쳐 지난다. 그래도 살아야 하니, 기업들이 신이 나 만든 1인 가구 겨냥 상품을 소비하느라 저축도 제대로 못 한다. 늘 생산가능인구를 고민해야 할 정부로선 권장할만한 가구 형태도 아니기에 별다른 지원도 없다.
 
1인가구의 사회경제적 풍경이란 게 이렇게 곱씹을수록 우울하지만, 혼자서도 잘(해보자 애쓰며) 사는 인간의 모습에서 나름의 ‘긍지’를 발견하면 다행이지 싶다. 앞으로 내가 할 얘기들도 거기에 있다. 입주 하루 만에 깨져버린 변기 백시멘트 가루를 물티슈로 훔치며 생각했다.
     

노동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