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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호흡기’로 버티는 경제…재건축 시장은 과열 걱정

바람아님 2016. 10. 11. 00:33

‘부동산 호흡기’로 버티는 경제…재건축 시장은 과열 걱정

[중앙일보] 입력 2016.10.1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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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의 8월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생산·소비·수출은 모두 침체 상태다. 생산은 전월 대비로 감소했다. 소비와 수출의 상승 폭도 미미했다. 하지만 유독 눈에 띄는 분야가 있었다. 건설 수주와 건설 기성(시공 실적)이다. 전월 대비로 건설 기성은 3.2%나 늘었다. 전년 동월 대비로 보면 23.6%나 증가했다. 건설 수주도 전년 동월 대비로 54.6%나 늘었다.

경기는 바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데 유독 부동산만 불타오른다. 지난 5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서 1순위 청약을 접수한 아크로리버뷰(신반포5차 재건축)는 평균 30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일반분양 28가구 모집에 8585명이 몰렸다. 분양가가 3.3㎡당 평균 4194만원으로 모든 가구의 가격이 9억원을 넘어 중도금 대출 보증을 받지 못하는데도 올해 수도권 최고 경쟁률을 보였다. 이 아파트 분양 신청자가 당첨을 예상해 한 달 이내에 준비해야 하는 계약금만 1조2000여억원에 달한다.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달아오른 강남권 시장은 이미 공급 과잉 우려로 경고등이 들어온 주택시장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기존 집값도 고공행진하고 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달 들어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값은 3.3㎡당 4012만원으로 역대 처음 4000만원을 돌파했다. 집값 거품 논란이 심했던 2006년(3635만원)보다 10% 더 높다. 부동산중개업소들은 “전매제한이 풀리는 즉시 웃돈을 받고 파는 ‘단타 전매’가 많고 2000년대 중반 지방에서 올라왔던 ‘상경 투자’가 다시 늘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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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권이 뛰며 지난달 서울 아파트 매매거래량(1만1000여 건)은 9월 기준으로 역대 최대였다.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 주간 상승률이 0.21%로 가격이 많이 오르던 지난해 10월 수준으로 올라갔다. 강남권 열기는 다른 지역보다 나은 투자성을 좇아 돈이 몰리기 때문이다. 공급 부족으로 주택 수요가 쌓였고 초과 수요에 따라 가격 상승 기대감이 높은 데다 저금리가 기름을 부었다. 2014년 말 기준 강남권 주택보급률이 96%로 서울 전체 97.9%보다 낮다. 여기에다 다른 지역에 비해 낡은 아파트가 많아 새 아파트로 갈아타려는 수요도 적지 않다. J&K도시정비 백준 사장은 “초과 수요로 인해 다른 지역의 두 배가 넘는 웃돈이 붙고 시세가 뛰는 재건축 단지는 ‘황금알’인 셈”이라고 말했다.

강남권 가격이 만만치 않지만 초저금리로 대출 부담이 적기 때문에 자금 동원이 어렵지 않다. 분양권을 6개월 뒤면 전매할 수 있어 그사이 필요한 계약금과 한 차례 정도의 중도금 등 총 분양가의 20% 정도만 마련하면 된다.

강남권 열기가 사실상 국내 경기를 끌고 가는 셈이다. 앞으로도 열기가 쉽게 식을 것 같지 않다. 미국 금리 인상으로 금리가 오르더라도 소폭에 그쳐 저금리 기조에는 변함이 없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내년 말까지 유예된 재건축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아직 분양 전의 단지들이 사업 속도를 내면서 재건축 기대감을 더욱 높이고 있다. 정부가 8·25 대책에서 밝힌 주택공급량 억제의 반사이익도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강남권 과열은 공급 과잉으로 치달을 수 있다. 부동산114는 지난해부터 늘기 시작한 강남권 분양으로 2018년 예정된 입주 물량이 예년의 두 배고 서울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1만3000여 가구로 추정했다. 이미 최근까지 분양된 물량만으로도 내년 이후 전국적으로 연간 10만 가구 정도의 아파트가 남아돌 것으로 예상된다. 연간 27만 가구 정도가 적정 수요인데 내년과 2018년 예상 입주 물량은 37만 가구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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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권 과열로 인한 주택시장 경착륙 가능성을 줄일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주문은 그래서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수천만원에서 억대에 달하는 분양권 웃돈이 분양시장을 달구고 있기 때문에 전매 차익을 노린 가수요를 차단하기 위한 전매제한, 재당첨 제한 등의 조치가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송인호 KDI 연구위원은 “중도금 대출 DTI(총부채상환비율) 적용 등 금융 규제와 분양가·물량에 대한 공공기관의 조정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고 말했다.

안장원·황의영 기자 ahnjw@joongang.co.kr



경기 바닥인데, 정부·한은 핑퐁게임만

[중앙일보] 입력 2016.10.10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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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오른쪽)이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서 재닛 옐런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환담하고 있다. 유 부총리는 7일 국제통화기금(IMF) 총회에선 “구조개혁으로 중장기 성장동력을 확충해야 한다”고 밝혔다. [사진 기획재정부]


“건설 투자를 중심으로 내수는 완만한 증가세가 유지됐다. 하지만 수출·제조업의 부진으로 경기 회복세가 여전히 미약하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9일 내놓은 ‘10월 경제동향’의 결론이다. 부동산 시장은 뜨겁지만 그 온기가 경기 전반으로 퍼지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보고서의 진단은 연초 이후 한결같다. 한마디로 ‘수출·제조업은 부진, 내수·서비스는 불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정부는 나랏돈을 풀고,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내려 경기를 떠받쳐 왔다. 충격을 흡수하면서 세계 경제가 체력을 회복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차원이었다. 하지만 나라 안팎의 경기는 좀처럼 회복 궤도에 올라서지 못했다. 수출은 19개월 연속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하다 올 8월 플러스(2.6%)로 전환했지만 9월엔 다시 -5.9%로 고꾸라졌다.

풀린 돈은 부동산 시장을 향했다. 부동산 주도의 ‘외끌이 경기’는 정책의 산물이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찮다.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되는 가계부채 문제를 심화해서다. 산업연구원 강두용 선임연구위원은 “건설 의존형 성장은 상당 부분이 가계부채로 뒷받침된다는 면에서 위험한 데다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로 지속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내수가 성장을 주도하려면 건설 외에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야 한다. 정부가 올해 상반기까지 자동차 개별소비세를 인하하고, 최근에는 할인행사인 ‘코리아 세일 페스타’를 주도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하지만 소비는 정책이 나올 때만 반짝 오를 뿐 ‘약발’이 떨어지면 다시 고꾸라지는 현상이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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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붓는 ‘마중물’의 규모가 커지면서 경기의 재정 의존도 역시 심화하고 있다. KDI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성장률 2.6% 중 재정의 기여도는 3분의 1가량인 0.8%포인트를 차지했다. 올해 1분기 성장률 0.5%에선 정부 부문의 기여도가 0.5%포인트였다. 민간 부문 기여도가 ‘제로’(0)였다는 얘기다.

이 결과 경기가 조금이라도 불안하면 모두 정부만 쳐다본다. 추가경정예산 집행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인 6일 정부가 다시 ‘미니 부양책’을 내놓은 것도 그런 영향이다.

문제는 재정·통화 정책의 여력 역시 점차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중은 내년에 40% 선을 넘어갈 예정이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본격화하면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더 내리기는 쉽지 않다.

사정이 이러한데 재정·통화당국 간 불협화음만 들려온다. 서로 경기부양을 책임지라는 ‘핑퐁게임’이 벌어질 조짐이다.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8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기준금리는) 아직 ‘룸’(여력)이 있다”고 밝혔다.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연차 총회 참석차 미국 워싱턴을 방문해서다.

반면 같은 행사에 참석한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금융 안정 리스크를 고려할 때 통화정책을 쓸 수 있는 여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재정건전성은 세계적으로 톱클래스”라고 덧붙였다. 재정정책을 쓸 여력이 아직 남아 있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에 매달려선 안 된다는 의미로 읽힌다.

성태윤 연세대(경제학) 교수는 “향후 경기를 낙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두 경제 수장이 공을 떠넘기는 모습은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당분간은 완화적 재정·통화정책을 유지하면서 구조개혁을 지속해 나가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말했다.

조민근·조현숙 기자 jm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