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시대 금관은 왕만 쓰는 게 아니었다.”
윤상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20일 금관총 재발굴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 논문 ‘금관총(국보 87호) 피장자의 성격 분석’에서 “경북 경주 금관총의 무덤 주인 ‘이사지왕(尒斯智王)’은 왕이 아니라 귀족”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에서 처음 금관이 나온 금관총은 1921년 일제에 의해 발굴됐으나 비전문가에 의해 단 4일 만에 도굴되듯 수습되면서 무덤 주인을 둘러싼 논란을 낳았다. 당초 금관이 나왔으니 무덤 주인은 당연히 왕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해방 이후 학계는 무덤에서 함께 나온 여성용 굵은 귀고리에 주목해 무덤 주인이 여성이라는 게 통설이 됐다.그러나 금관총에 굵기가 가는 남성용 장식이 있어 반론은 잔존해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금관총에서 ‘이사지왕’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칼집이 발견되며 무덤 주인의 정체 논란이 새삼 가열됐다. 2015년 처음 단행돤 재발굴 조사를 통해 무덤 크기, 구조 등이 밝혀지면서 95년 된 미스터리가 풀리고 있다. 윤 연구관은 “금관총 호석(봉분을 둘러싸고 박은 돌) 크기를 추정해보니 45m 내외”라며 “이 무덤의 축조 방식인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은 4∼6세기 내물왕, 눌지왕 등 마립간 시대의 무덤이지만 마립간의 무덤은 호석이 50m가 넘는다”고 했다. 금관총 주인을 마립간의 무덤이라고 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 “창·화살촉·마구·갑옷·목걸이·금관·모자 같은 부장품을 분석한 결과 피장자가 남성이라는 결론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사지왕은 신라 왕인 마립간이 아니라 6부의 최고위층인 귀족 신분이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논문은 21일 경주박물관에서 열리는 ‘마립간의 기념물, 적석목관분’심포지엄에서 발표된다.
손영옥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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