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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세계사] 식민지 개척 시대부터 집과 재산, 총으로 지켰대요

바람아님 2016. 10. 27. 09:19

(조선일보 2016.10.27 김승호 인천포스코고 역사 담당 교사)


독립전쟁 일어나자 민병대 조직, 집에 있던 총으로 영국군 물리쳐

수정 헌법 2조, 총기 소유 보장 

남북 전쟁 이후 총기 범죄 늘어나 총기 규제하려는 노력 계속됐지만

미국총기협회가 번번이 반대해요


지난 19일 서울 강북구 오패산터널 부근에서 전자 발찌를 끊고 달아난 성범죄 전과자가 사제 총기를 발사해 경찰관 한 분이 

목숨을 잃는 사건이 있었어요. 이번 일로 우리나라에서도 불법으로 총을 만들어 범죄에 쓰는 일이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지요.


총은 군인들이 나라를 지키는 무기로 쓰기도 하지만, 범죄 수단이 되어 죄없는 사람의 목숨을 뺏기도 해요. 

그래서 우리나라를 비롯해 대부분의 나라는 특별한 이유 없이 일반인이 총을 가질 수 없도록 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와 달리 일반인도 합법적으로 총을 가질 수 있게 허용하는 나라들이 있어요. 미국이 가장 대표적이지요. 

미국 남성 약 32%, 여성 약 12%가 총을 갖고 있고, 지난해 미국에서 팔린 총기만 약 2314만정이나 된다고 합니다. 

미국은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총을 가질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는 걸까요?


◇'미니트맨'과 수정 헌법 2조


미국은 원래 영국이 개척한 식민지였어요. 

영국과 유럽 곳곳에서 넘어간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 동쪽 해안 지역을 개척해 자리를 잡았지요. 이때부터 식민지 

개척민들은 대부분 총을 갖고 있었어요. 식민지에서는 원주민이 공격해오거나 짐승이 습격하면 스스로 집과 재산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죠. 사냥해서 고기를 얻기 위해서라도 총은 꼭 필요했지요. 즉 개척민들에게 총은 자신을 지키는 

보호 수단이자 생활 수단이었던 거예요. 이런 사정을 알았던 영국 의회도 개척민들이 각자 총을 가질 수 있도록 

'무장할 자유'를 법으로 보장해주었답니다.


1775년 4월 미국 민병대와 영국군이 처음으로 충돌한 렉싱턴 전투를 그린 그림이에요. 미국 민병대는 집에 보관하던 총을 들고 나온 식민지 개척민들로 조직되었어요.

▲ 1775년 4월 미국 민병대와 영국군이 처음으로 충돌한 렉싱턴 전투를 그린 그림이에요. 

미국 민병대는 집에 보관하던 총을 들고 나온 식민지 개척민들로 조직되었어요. /위키피디아


그런데 1770년대부터 개척민들은 총을 독립운동 수단으로 사용했어요. 계속된 전쟁으로 재정난을 키운 영국 정부가 

식민지에 매기던 세금을 지나치게 높이자 개척민들이 '우리 동의 없이 세금을 매길 수 없다'고 반발했어요.

그러자 영국은 아메리카 대륙에 군대를 보내 이를 진압하려고 했지요.


정규 군대가 없던 식민지 개척민들이 영국 군대에 맞서려고 각자 집에 둔 총을 들고 나와 민병대를 조직했어요. 

이들은 '1분 안에 출동할 수 있게 준비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미니트맨(minute-man)'이라고 불렀답니다. 

1775년 보스턴 근처 렉싱턴에서 영국 군대와 '미니트맨'이 처음으로 무력 충돌을 벌인 렉싱턴 전투를 시작으로 

본격적 독립전쟁이 시작되었어요. 버지니아 민병대 대령 출신인 조지 워싱턴 장군은 40만명 가까운 민병대를 이끌어 

영국군과 전투해 승리했고, 마침내 미국은 독립을 이루게 되었답니다.


민병대를 통해 독립을 이룬 미국인들은 '총은 곧 내 자유와 생명, 그리고 나라의 독립을 일궈낸 수단'이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어요. 독립을 주도한 정치가들도 '개인이 총을 갖고 있어야 독재와 폭압을 벌이는 정치가를 언제든 몰아내고 

자유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지요. 그래서 1791년 발효한 수정 헌법에는 "규율을 갖춘 민병대는 자유로운 주정부의 안보에 

필요하므로 무기를 소유하고 휴대할 국민의 권리가 침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는 조항을 포함했어요. 이것이 일반인의 

총기 소유를 보장하는 '수정 헌법 2조' 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미국인은 이 수정 헌법 2조를 근거로 총기 규제를 반대하고 있지요.


◇남북전쟁과 미국총기협회(NRA)


렉싱턴 위치 지도

미국 전역에 총기가 확산된 계기는 1861년에 일어난 남북전쟁입니다. 

노예제 폐지를 주장한 북부와 노예제 폐지를 반대한 남부가 나뉘어 4년간 전쟁을 

벌이면서 총이 약 400만정 생산되었어요. 북부의 승리로 전쟁이 끝나자 

미 연방정부는 군인들이 각자 갖고 있던 총과 탄약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갈 수 있게 

허용했어요. '총은 나를 지키는 동시에 나라를 하나로 뭉치게 만든 수단'이라는 

믿음이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이때부터 총을 이용한 살인이나 강도 같은 범죄가 급격히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특히 주머니에 넣어 숨길 수 있는 소형 권총이 개발되면서 총이 범죄 도구로 이용되는 일도 늘어났지요. 

최근에도 미국에서는 죄 없는 사람들이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계속되고 있어요. 

지난 6월 플로리다주 올랜도의 한 클럽에서 총기 난사로 49명이 목숨을 잃는 끔찍한 사건이 있었고, 

2012년에는 코넷티컷주의 한 초등학교에서 총기를 난사해 어린이 20명이 목숨을 잃기도 했어요.


이런 일을 막고자 총기를 규제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인이 "총은 나라의 독립을 이루고 나의 자유와 생명을 지키는 수단"이라며 총기 규제에 반대하고 있어요. 

특히 미국총기협회(NRA)는 미국에서 가장 강력한 이익 단체로 총기를 규제하는 법률을 번번이 가로막고 있답니다. 

미국의 역사는 총이 개인의 자유를 지키고 나라의 독립을 이룬 수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무 많은 사람이 쉽게 가지게 

되면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는 걸 보여준답니다.




☞미국총기협회


미국총기협회(NRA·The National Rifle Association of America)는 남북전쟁에 참가했던 장교들이 “미국인들의 사격술을 

향상시키자”는 취지로 1871년 만든 단체예요. 각종 사격대회와 사격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미국인들에게 총기 소유와 

사격을 권장하는 동시에 막대한 자금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총기 규제를 막기 위한 로비 활동을 벌이고 있어요.


미국총기협회에는 총기 제조업자와 사격 선수, 총기를 가진 일반인은 물론 전직 대통령과 스포츠 스타 등도 회원으로 

가입하고 있어요. 특히 영화 ‘벤허’의 주연배우였던 찰턴 헤스턴은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회장직을 맡아 총기 규제를 막는 

데 앞장섰었어요.


지난 2000년 미국 대선 당시 민주당의 엘 고어 후보가 총기 규제 법안을 강력하게 추진하려 하자 헤스턴은 

"총을 빼앗으려거든 나를 먼저 죽이라"며 반대 운동을 펼쳤고, 엘 고어는 공화당 후보였던 조지 부시에게 패배했어요. 

총기협회의 반대 운동이 대선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