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0.25 지호진 어린이 역사 전문 저술가)
[청탁금지법]
친척 간 부정 청탁 없애기 위해 조선 태종 때 실시된 '분경금지법'
집안일로 만나는 4촌 이내 친족 외 권세 높은 친척 개인적 만남 금지
현재 시행 중인 '청탁금지법'처럼 부정부패 막기 위한 여러 법 있었죠
이른바 '김영란법(청탁금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지 한 달 가까이 되었어요. 이 법으로 접대 자리가 사라지면서 부정한 청탁이 줄어드는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우리 역사에도 '청탁금지법'처럼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여러 법과 제도가 있었답니다.
우리 조상들은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친척도 만나지 못하게 한 분경금지법
조선 제2대 임금 정종은 1399년에 신하들에게 "모든 관리는 3·4촌 내 가까운 친척을 제외한 자신보다 높은 벼슬에 있는
친척을 사사로이 만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이를 '분경방지법'이라 부르는데 실제로 시행된 것은 정종의 뒤를 이어 태종이 왕이 된 이후랍니다.
▲ 그림=정서용
분경금지법은 권세가 높은 친척의 집을 드나들며 더 좋은 관직으로 나아가기 위해 뇌물을 바치고 청탁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이에요. 여기서 분경(奔競)은 분추경리(奔趨競利)의 줄임말로 '분주히 쫓아다니며 이익을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높은 벼슬에 있는 친척을 사적인 장소에서 만나지도 못하게 하여 친척 간의 부정한 청탁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한 것이었죠.
단, 집안일로 꼭 만나야 하는 4촌 이내의 가까운 친족 사이거나 군사기밀을 다루는 장수들은 예외로 두었어요.
성종 때에는 8촌까지는 사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분경금지법을 완화했지만, 그럼에도 이 법을 어겼을 경우에는
곤장을 쳐서 먼 시골로 유배를 보낼 정도로 엄격한 형벌 조항을 두었어요.
◇상피제와 원악향리처벌법
관리들의 부패를 막기 위한 인사 제도로는 상피제(相避制)라는 것이 있었어요.
상피제(相避制)란 친척 사이인 관리들은 같은 관서에 함께 있거나 밀접한 관계에 있는 관서에 근무하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친족 사이인 관리들이 힘을 모아 부정부패를 저지르거나, 세력을 모아 부정한 권력을 휘두르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죠.
고려 선종 때 처음 실시된 상피제는 조선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었다고 해요.
'경국대전'에서는 향리(지방 하급 관리) 중에 '고을 수령을 조종해 마음대로 권세를 부린 자'
'몰래 뇌물을 받고 부역을 면해준 자' '세금을 받을 때 백성으로부터 수고비 등을 받은 자' 등을 원악향리(元惡鄕吏)라고
규정했어요. 원악향리는 '사악한 시골 향리'라는 뜻으로, 이런 향리들은 엄격한 벌을 받게 했습니다.
그래서 이 법을 '원악향리처벌법'이라고 불러요.
또 관리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경제적인 이익을 벌어들인 죄를 '장오죄'라고 불렀어요.
오늘날 뇌물이나 횡령 같은 각종 비리·경제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죠.
조선 시대에는 장오죄를 저지른 관리는 명단을 따로 만들어 본인은 물론 그 아들과 손자까지 벼슬을 얻지 못하도록
했다고 합니다.
◇역사 속 부패 방지법은 제대로 지켜졌을까
그런데 이 법과 제도들은 잘 지켜졌을까요?
역사학자들은 "법률이 만들어진 직후나 왕권이 강력했을 때는 잘 지켜졌을지 모르지만,
조선 시대 내내 이 법과 제도들이 잘 지켜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해요.
조선 중기 이후에는 같은 가문 사람끼리 높은 벼슬을 독차지하는 외척·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렸고,
관직을 돈으로 사고파는 '매관매직'이나 인사 청탁도 성행했어요.
지방에서도 관리들이 부정부패를 일삼고 백성에게 세금을 가혹하게 거둬들인 탓에 민란이 빈번하게 일어났고요.
당쟁이 심할 때는 각 당의 이해에 따라 부패 방지법을 어긴 관리에 대한 형벌의 정도가 달라지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성종 때 관리인 홍한이란 인물은
"우리 조정에서는 법을 집행하는 것이 한결같지 않고 사정에 따라 낮추었다 높였다 하는 일이 많기에
지방 관리들이 법을 두려워하지 않고 부패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며
"법대로 처리한다면 관리들의 부패가 줄어들 것"이라고 임금께 아뢰었다고 합니다.
이를 미루어 보아 조선의 부패 방지법이 제대로 효과를 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역사를 통해 우리는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법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법을 공정하게 시행하고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
솔선수범해서 법을 잘 지켜야 우리 사회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경국대전은 나라를 다스리는 법을 정리한 조선 시대의 법전입니다. ‘경국(經國)’은 ‘나라를 다스린다’는 뜻이고, ‘대전(大典)’은 ‘중요하고도 큰 법전’을 뜻합니다. 조선의 제7대 왕 세조가 경국대전 편찬을 시작했고 예종을 거쳐 그다음 왕인 성종이 1485년 편찬을 마치고 경국대전을 시행하도록 했어요. 경국대전에는 조정의 관료 조직부터 형벌과 재판, 토지와 세금, 의례, 군사제도 등 6개 분야에 총 319개 법 조항이 담겼어요. 경국대전은 조선이 법을 통해 다스려진 나라였음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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