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도서관 전시 '조선의 사전'
친절한 설명에 조리과정 사진까지 곁들인, 제대로 된 레시피 하나만 있다면 제 아무리 솜씨 없는 주부라도 그럴 듯한 요리 한 그릇 뚝딱 내어낼 수 있다. 조선 부녀자들에게 ‘규합총서’(閨閤叢書)는 그런 단비와 같은 존재였다. ‘규합’은 부녀자가 거처하는 방을 가리키는 말로, 규합총서는 부녀자들이 알아야 할 가정살림과 일반교양에 대한 내용을 모두 정리해놓은 백과사전이다. 많은 분야에 방대한 지식을 보유했던 상류층 여인 빙허각 이씨(1759~1824)가 1809년 만든 이 책은 주제별로 나눠 필사되거나 목판본으로 만들어질 정도로 인기가 좋았다.
여러 섹션으로 나뉘어 기록된 책에는 장 담는 법, 술 빚는 법, 옷 만드는 법부터 밭을 가꾸고 가축을 기르는 법, 올바른 태교 방법, 심지어 부적과 주술로 마귀를 쫓는 일에 이르기까지 자세하고 분명하게 서술했다. 각 사항 별로 인용한 책 이름을 작은 글씨로 표기했고, 자신이 직접 실행해본 결과와 의견을 덧붙이기도 했다. 요긴한 지식을 한 데 모으며 저자는 서문에 “진실로 일용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것이요, 부녀가 마땅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라고 썼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조선시대에 유행한 다양한 종류의 사전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 ‘조선의 사전’을 내년 1월 31일가지 본관 6층 고문헌실에서 열고 있다. 통치와 백성 교화를 위해 국가 주도로 백과사전을 편찬ㆍ보급한 것과 더불어 조선에서는 민간 제작 사전도 활발히 유통됐다. 조선에서 실용사전이 광범위하게 이용됐음을 보여주기 위해 전시는 백과사전ㆍ한자사전ㆍ생활백과사전ㆍ특수사전 등 종류별로 나눠 총 20종 170책을 선보인다.
일부 양반들은 미니 백과사전을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동판수진일용방(銅板袖珍日用方)’은 세로 길이가 9㎝에 불과한 구리판에 새겨 찍어낸 사전이다. 조선 임금들의 계보, 국가의 기념일, 주요 관청과 관직의 이름, 혼례 등 각종 의례 시 갖춰야 할 글의 형식 등 양반이라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할 지식들을 몸에 지니고 다니며 틈틈이 확인했다.
크기는 작지만 생활 속 꿀팁도 다량 수록돼 있었다. 전국 주요 지점의 거리 정보를 비롯해 운세 보는 법, 길일 택하는 법, 각종 민간 요법 등 각종 정보가 빼곡히 담겨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이기봉 학예연구사는 “전해지는 사전 수가 많은 점으로 미뤄볼 때 당대 상당히 많이 판매됐던 것으로 보인다”며 “주된 수요층은 양반이었겠지만 글을 읽을 수 있는 중인도 많이 봤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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