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정치를 할까
이정철 지음, 너머북스
560쪽, 2만9000원
이이·박순·이산해·류성룡·정철·성혼·이원익·노수신·심의겸·김효원·이발…. 조선왕조 500년에서 손꼽을 만한 쟁쟁한 인물들이 함께 활약했던 시대는 언제일까. 이황·이준경·기대승 같은 인사들도 넣을 수 있다. 혼군(昏君·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으로까지 비하되기도 하는 조선 14대 임금 선조 시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이 시대만큼 정치의 이상 이 드높이 외쳐진 때도 드물다. 성리학(주자학) 이론과 도덕심으로 무장한 지식인들이 정치를 주도했지만 그 결과는 비극이었다. 왕권 강화에만 몰두한 선조 한 사람의 잘못으로만 돌릴 순 없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서양 정치학 교과서에 많이 나오는 얘기인데, 우리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선조 시대를 얘기한다고 해서 임진왜란(1592~1598)으로 나라가 파국의 위기를 맞았던 점을 다시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시기의 문제점은 이미 많이 지적돼 왔다. 신간에서 새롭게 문제로 지목한 것은 그 이전이다. 선조가 왕위에 오를 때는 사림(士林)이라고 불리는 젊은 지식인 정치인들이 본격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시기였다. 그들은 도덕성을 앞세워 기득권 훈구 세력을 압박했다. 조선의 역대 임금 가운데 첫 ‘서자 출신’으로 정통성이 약했던 선조는 초기에 사림파를 전략적으로 지원했다. 민생을 위한 정치 개혁이 사림의 주도로 활발히 진행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은 선조가 집권하고 25년이 흐른 후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조선을 멍들게 한 당쟁이 시작됐다. 당쟁 그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집단이 권력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보편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