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책 속으로] 인재 넘쳤던 선조 시대 파국 맞은 까닭

바람아님 2016. 11. 5. 23:32

[중앙일보] 입력 2016.11.05 00:15 


선조 집권 후 사림파에 눌린 훈구파 동인에 합류하며 갈등 양상 격화 

정치적 옳고 그름 떠나 선악 대결 상대 몰아 세우며 권력·사익 추구


기사 이미지
왜 선한 지식인이
나쁜 정치를 할까

이정철 지음, 너머북스
560쪽, 2만9000원

이이·박순·이산해·류성룡·정철·성혼·이원익·노수신·심의겸·김효원·이발…. 조선왕조 500년에서 손꼽을 만한 쟁쟁한 인물들이 함께 활약했던 시대는 언제일까. 이황·이준경·기대승 같은 인사들도 넣을 수 있다. 혼군(昏君·사리에 어둡고 어리석은 임금)으로까지 비하되기도 하는 조선 14대 임금 선조 시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이 시대만큼 정치의 이상 이 드높이 외쳐진 때도 드물다. 성리학(주자학) 이론과 도덕심으로 무장한 지식인들이 정치를 주도했지만 그 결과는 비극이었다. 왕권 강화에만 몰두한 선조 한 사람의 잘못으로만 돌릴 순 없다. 좋은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서양 정치학 교과서에 많이 나오는 얘기인데, 우리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선조 시대를 얘기한다고 해서 임진왜란(1592~1598)으로 나라가 파국의 위기를 맞았던 점을 다시 지적하려는 것은 아니다. 임진왜란 시기의 문제점은 이미 많이 지적돼 왔다. 신간에서 새롭게 문제로 지목한 것은 그 이전이다. 선조가 왕위에 오를 때는 사림(士林)이라고 불리는 젊은 지식인 정치인들이 본격 정치무대에 등장하는 시기였다. 그들은 도덕성을 앞세워 기득권 훈구 세력을 압박했다. 조선의 역대 임금 가운데 첫 ‘서자 출신’으로 정통성이 약했던 선조는 초기에 사림파를 전략적으로 지원했다. 민생을 위한 정치 개혁이 사림의 주도로 활발히 진행될 수 있는 분위기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것은 선조가 집권하고 25년이 흐른 후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조선을 멍들게 한 당쟁이 시작됐다. 당쟁 그 자체를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정치적 견해가 다른 집단이 권력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것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에서나 보편적 현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양상이다.

기사 이미지

선조 3년(1570)에 그린 ‘독서당계회도(讀書堂契會圖)’. 임금의 명을 받아 독서하던 문신들의 계회(契會·계 모임)를 그린 그림이다. 이이·류성룡·정철·윤근수 등 9명이 이 모임에 참여했다. [사진 너머북스]


이 책은 동서분당이 발생한 선조 8년(1575)부터 기축옥사가 일어난 선조 23년(1590)까지 15년간의 당쟁을 집중 조명하고 있다. 특히 강조해 지목하는 것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벌어진 당쟁이 사림파와 훈구파 간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쟁은 사림파 사이에서 전개됐다. 선조 8년에 인사권의 핵심 보직인 이조 전랑 자리를 놓고 심의겸과 김효원의 대립으로 동서 분당은 본격화된다. 일시적으로 서인이 승리한 듯했으나 동인 세력은 계속해서 확대되고 강해졌다.

선조 11~12년에 들어서면서 갈등은 색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선조 집권 후 사림파의 득세에 숨죽이고 있던 훈구파들이 동인 세력에 합류하기 시작했다. 갈등의 양상도 격화됐다. 당쟁이 정치적 판단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수준을 떠나 자신은 선, 상대는 악으로 규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사림파들끼리 자신은 군자, 상대는 소인으로 규정했다. 시비(是非) 논쟁에서 선악(善惡) 논란으로 비화되며 돌아오기 힘든 다리를 건너간 것이다.

동인과 서인은 서로 공론(公論)을 내세우며 상대를 몰아붙였지만 결국 권력욕과 사익 추구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림의 분열은 선조의 독재로 이어졌다. 율곡 이이만이 사림을 다시 하나로 묶어 개혁정치를 일관되게 추진하려했지만 동료 사림들의 외면으로 끝내 실패했다고 저자는 평가했다. 한국국학진흥원 연구원인 저자 이정철 박사는 『대동법, 조선 최고의 개혁』(2010)을 펴낸 직후부터 이 책을 구상했다고 한다. 선조 시대 당쟁사를 다루고 있지만, 현대 한국 정치에 대한 성찰로도 읽히는 책이다.
 
[S BOX] 당시 지식인들 도덕신념 투철, 정치적 책임의식 희박
선조 시대 사림들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개념으로 저자는 ‘책임’을 제시했다. 도덕적 신념은 투철하지만 정치적 결과에 대한 책임의식은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도덕적 신념은 그 시대의 고유한 인간형을 만들어 냈다. 예를 들어 정철과 최영경은 당파를 달리하며 서로를 미워했지만, 그들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비슷했다고 한다. “악을 미워하는 마음이 지나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구차히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시대 사림의 일반적 특징이기도 했다.

율곡은 ‘시의(時宜·시대적 과제)’와 ‘실공(實功·가시적 성과)’을 모두 중시했다는 점에서 예외적 인물로 평가받는다. “정치를 하면서 시의를 모르고, 일을 당하여 실공에 힘쓰지 않으면 성군(聖君)과 현신(賢臣)이 만나도 성과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선한 의도나 윤리가 정치를 대신할 수 없다는 교훈을 선조 시대를 통해 되새겨보게 한다.

배영대 문화선임기자 balanc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