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목멱칼럼] 한국경제 '러너스 하이' 머지않아

바람아님 2016. 11. 28. 23:37
이데일리 2016.11.28 05:00

경제를 스포츠에 비유하면 장거리 육상경기인 마라톤과 비슷하다. 마라톤이 42.195km를 달리는 종목인만큼 마치 100m 달리기처럼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긴 안목으로 접근해야 하고 초반에 다소 부진해도 역전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다.

다만 경제가 마라톤과 다른 것은 완주거리나 결승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경제발전을 위해 과거에서부터 이어 달려왔으며 앞으로도 끝나지 않은 장거리 여정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경제 마라톤’이라는 글로벌 무대에서 국가대표 선수로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그동안 뛰어난 레이스를 펼쳐왔다. 특히 승부를 걸어야 하는 중대 지점마다 한국은 치고 나오는 저력을 발휘해왔다. 그 노력의 결과로 한국이 이제 선두권 반열에 올라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나가던 국가들은 ‘한강의 기적’을 일궈낸 한국을 쳐다보며 놀라워하는 모습이다. 뒤따라오던 후발주자들은 한국을 본보기로 삼았다. 이는 대한민국 국민과 기업 그리고 정부가 열심히 뛴 결과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동안 잘 달려온 한국이 최근 주춤하는 모습이다.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수출·소비·인구 절벽과 맞닥뜨렸기 때문이다. 한국 수출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으며 주력 산업은 하나 둘 쓰러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인구는 줄어들고 경기는 좀처럼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힘들게 달려온 만큼 깊은 한숨을 내쉰다. 앞에 놓인 절벽을 뛰어넘지 못하면 한국경제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어둠속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경제 마라톤에서 페이스를 잃는 순간 선두로 나서기는 어렵다. 이웃 나라 일본이 그랬고 결국 그들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걸어야 했다.


한국도 이제 해법을 찾기 위해 서두르고 있다. 그런데 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누구도 선뜻 해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각종 무리수나 악수가 나오고 있지만 이를 수용할 수 밖에 없는 ‘뉴노멀’ 시대를 맞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어떤 나라인가. 포기란 있을 수 없다. 목표는 완주다. 물론 이에 따른 전 방위적인 고통이 뒤따른다. 눈앞에 닥친 장애물과 사양산업, 선두권을 놓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 등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지 않는가. 지금껏 기적을 일궈냈듯이 이제 마라톤 결승점을 눈 앞에 두고 있는 순간이다.


마라토너는 대개 35km 구간에서 극한의 고통을 느낀다. 이 때문에 많은 마라토너들이 질주를 포기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를 악물고 달리면 어느 순간 고통이 사라지고 희열을 느끼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를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라고 부른다. 극한의 고통을 이겨내고 느끼는 희열감은 막판 질주를 도와주는 원동력이자 다음 마라톤을 기대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한국 경제도 지금 러너스 하이 구간을 달리고 있다. 이 고통을 이겨내면 희열에 빠져드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그러나 만일 힘들다고 여기에서 포기한다면 지금까지 일궈낸 성과는 모두 물거품이 되버린다. 이로 인해 한국의 경제 마라톤은 지루하고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고통을 감내하며 뛰고 또 뛰어야 한다. 그것이 현재 어려운 질주를 마무리할 수 있는 길이며 다음 마라톤을 이어갈 후세를 위한 용기의 결정체다.


영국 청교도혁명의 주인공 올리버 크롬웰은 이렇게 말했다. ‘성공은 높은 점프도 긴 점프도 아니다. 성공은 마라톤 발걸음들이다.’ 6.25의 비극과 온갖 역경을 이겨낸 한국이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지나치게 높고 긴 점프를 할 필요는 없다. 지루한 마라톤이지만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성공은 따라오게 마련이다.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도전정신과 창의적인 개척정신이 더욱 절실한 시점이다.


김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