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1.29 호경업 산업2부 차장)
몇 해 전 안현호 무역협회 당시 부회장을 인터뷰했을 때다.
그는 "중국은 우리가 세계 1위를 달리고 있는 IT(정보기술) 분야에서 조만간 우리를 뛰어넘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지식경제부(현 산업부) 1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물러나 '한·중·일 경제 삼국지'를 주제로
연구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산업발전 속도 차가 20년 정도였다면 중국이
우리 산업을 뒤쫓는 속도는 그보다 훨씬 빠르다. 특히 IT 분야는 표준화된 부품이 많고 대만의 산업 협력
지원을 받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산업 분야 중 가장 빠르게 잠식당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그 예상은 현실이 됐다. 4년 전 한국은 스마트폰·TV·디스플레이(LCD) 등에서 세계 1위였다.
중국이 앞선 분야는 PC 정도였다.
하지만 올해 3분기를 기점으로 스마트폰 분야에서 중국의 화웨이·오포·비보 3사 점유율이 삼성전자를 뛰어넘었다.
같은 기간 세계 TV 시장에서 한국과 중국 간 국가별 점유율은 불과 0.3%포인트 차이로 좁혀졌다.
디스플레이 점유율은 내년을 기점으로 중국이 한국을 뛰어넘을 게 확실하다.
중국의 이번 추월은 중공업 산업의 데자뷔(어디선가 본 느낌)다.
2011년 현대중공업 한 임원은 "아무리 중국이 조선소를 지어도 기술로 무장한 한국 조선소는 영향받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이 양적으로 우리를 따라왔지만 기술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현재 조선산업은 공급 과잉의 늪에 빠져 뼈를 깎는 구조조정 중이다.
향후 경기가 좋아져도 우리 조선 기술이 여전히 중국을 앞선다고 자신 있게 말할 경영진은 찾기 힘들 것이다.
중국 철강이 한국의 10배 생산량을 갖춰도 기술력으론 포스코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바오산철강 같은 중국 제철소가 철강 제품 중 가장 고부가가치 제품인 자동차 강판을 만들어
포스코와 경쟁하고 있다.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 가운데 중국을 확실하게 능가하는 제품은 이제 반도체뿐이다.
이 또한 2~3년 후에는 가슴을 졸이며 시장 상황을 봐야 한다.
중국은 20조원 규모의 반도체 투자펀드를 만들어 디램 반도체 같은 첨단 제품 공장을 '중국 땅'에 짓고 있다.
국내 대형 로펌의 한 인수·합병 담당 변호사는 "지금은 중국에서 한국의 첨단 바이오, 게임, 로봇 기업을 사들이는 데
관심을 갖고 있지만 1~2년 후엔 그럴 일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4년 전 인터뷰를 떠올리며 안현호 전 부회장은 절박하게 말했다.
"위기론이 현실로 바뀐 마당입니다. 늦었다 생각 말고 이제라도 경제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 재도약을 노려야 합니다.
그 수밖에는 없습니다."
시스템을 바꾸는 작업은 정치 리더십이 작동해야 가능하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가 모든 국가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기세다.
광화문의 거대한 촛불 바다에서 우리가 먹고살 길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두렵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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