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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선 한국경제, 성장우선주의 버려라 (상)] 단기 부양책에만 집착.. 공평한 분배는 '뒷전'

바람아님 2016. 12. 6. 00:02
국민일보 2016.12.05 18:00

<상> 무너진 경제 허리

창조경제를 성장동력으로 삼고 경제민주화를 통한 상생을 표방했던 '박근혜노믹스'는 실패했다. 지난 4년간 성장은 정체됐고 분배는 불공평해졌다. 야심 차게 내놓았던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은 초라한 성적표를 앞두고 있다. 국가경제의 뼈대인 가계를 튼튼히 해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지도에 없는 길'은 표류했다. 이제라도 대기업·수출 위주의 '성장 우선주의'에서 탈피해 대안을 찾아야 한다. 국민일보는 3회에 걸쳐 경제정책 패러다임 전환과 대내외 위기의 해법을 모색한다.


박근혜정부는 출범 초기에 ‘대기업·수출 위주 성장정책’을 버리겠다고 했다.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두 날개로 삼아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실체는 달랐다. 고질적인 추가경정예산 편성, 부동산 시장 활성화 등 단기부양책에 기댔다. 성장이 정체되면서 분배 문제는 뒤로 밀렸다.


경제의 근간인 가계소득을 늘려 소비와 내수를 키우겠다는 정책은 ‘립서비스’에 그쳤다. 다시 대기업의 투자에 목매는 관행이 되풀이됐고, 산업구조 개혁은 지지부진해졌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의 종료시점이 2개월가량 남은 현재 한국경제가 총체적 위기에 휩싸여 있다는 진단을 반박하는 이는 드물다.


‘눈앞의 성과’에만 집착

4%대 성장을 표방한 박근혜정부는 성장률이 3%에도 이르지 못하자 ‘눈앞의 성과’에 매달렸다. 집권 4년 동안 3번의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수십조원의 ‘경기부양 패키지’는 경제정책의 단골 메뉴가 됐다.

2014년에 취임한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지도에 없는 길’로 경제체질 개선을 꾀했다. ‘가난한 가계, 부자 기업’이라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가계소득 증대를 통한 성장정책을 내세웠다. 가계소득 증대세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세제개편안에서 가계소득 증대세제 보완방안을 마련했지만, 이미 시기를 놓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동산을 불쏘시개로 한 경기부양책은 일정 부분 성공했다. 서울의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를 중심으로 부동산 시장은 과열됐고, 단기적인 경제성장률 제고에 기여했다. 올 3분기 성장률 0.6% 가운데 건설투자 기여도는 0.5%에 달할 정도였다. 다만 반대급부로 가계부채가 급증했고, 우리 경제를 위협하는 ‘시한폭탄’으로까지 덩치를 키웠다.


재정·조세의 분배기능 마비

성장이 지체된 것 이상으로 분배는 나빠졌다. 조세와 재정정책을 동원해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강화하는 선진국과 달리 정부의 정책 의지는 빈약했다. 우리나라의 조세를 통한 소득 재분배 효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3분의 1밖에 안 된다. OECD 회원국은 조세정책으로 지니계수가 평균 34.5% 개선됐는데, 한국은 그 효과가 9.2%에 불과했다.


되레 조세정책은 고소득층에 유리하게 전개됐다. 가업상속 공제율과 공제한도는 증가했고, 부동산 임대소득 등 자산소득 과세는 제자리걸음이다. 반면 소득수준과 상관없이 일정액을 일괄적으로 내는 담뱃세와 지방세 등은 인상됐다. 연세대 성태윤 교수는 5일 “정권 초기 구조개혁이 진척되지 않는 가운데 경기가 가라앉았다”면서 “정부의 경기 대응은 부실했고, 분배 기능도 제대로 작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창조경제·경제민주화’라는 허상

창조경제는 처음부터 모호했다. 굳이 정의를 내린다면 규제완화를 통해 중소·중견기업 경쟁력을 강화하고, 창업을 활성화한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다. 엉뚱하게도 창조경제는 ‘최순실 게이트’를 거치면서 실체가 명확해졌다. 박근혜정부 경제정책의 뼈대인 창조경제는 비선실세들의 국정농단 수단이었다.


나머지 한쪽 날개인 경제민주화는 집권 2년차부터 사실상 ‘실종’됐다. 청와대는 2014년 상반기가 지날 즈음부터 공정거래위원 고위 관계자에게 ‘경제민주화’ 단어조차 쓰지 말라고 지시했다. 주무부처인 공정위는 지난해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경제민주화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작동했다. 최순실씨가 개입한 KD코퍼레이션 비리 사건이 단적인 사례다. 최씨는 딸 정유라씨 친구의 부모인 이모씨로부터 명품백 등을 받았고, 이어 청와대를 통해 현대차에 압력을 가했다. 이씨가 운영하는 KD코퍼레이션은 현대차로부터 11억원 상당의 납품계약을 성사했다.


한양대 하준경 경제학과 교수는 “창조경제를 통해 중소기업을 만들어도 대기업과 상생할 수 있는 경제민주화 여건이 안 됐다”면서 “고소득층 등 경제적 강자가 독식을 하는 흐름이 꾸준히 강해졌다”고 비판했다.


세종=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전진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