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6.12.03 한삼희 수석논설위원)
선진국 60% 전기료 오염·폐로·갈등 비용 제대로 반영 안 해… 전기로 소금 제조까지
與野 주도 요금 개편, 눈앞 불만 털어내기… 에너지 불합리 방치
정부가 전기료 누진제 완화안을 공개했다.
누진 구간을 6단계에서 3단계로 좁히고 누진율을 11.7배에서 3배로 축소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가정 전기료가 10.4 ~11.5% 인하된다.
얼마 전 공청회가 열렸고 이달 중순 최종안이 정해진다.
정부 안은 여당이 참여해 만들었다. 민주당도 9월 말 '3단계 축소, 누진율 2.6배' 안을 내놨다.
정치권이 전기료 개편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은 2013년엔 누진제 개편은 '부자 감세'라며
반대해 무산시켰다. 올여름 전기료 폭탄에 대한 불만이 솟구치자 입장을 180도 바꿨다.
우리나라 전기 요금은 정부가 결정한다.
시장 요금이라면 사용자들이 쓰는 전기의 공급 비용을 제대로 반영하면 된다.
고압(高壓)·저압에 따라 달라지는 배전 비용과 발전소~소비자 거리에 따른 송전 비용을 감안해 요금을 달리하는 게
합리적이다. 또 피크타임 여부에 따라 전력 생산원(源)이 달라지므로 계절·시간대별로 요금을 차등해 매기면 된다.
우리는 그게 아니라 가정용·산업용·일반용 등 용도별로 요금을 달리하는 것이 기본이다.
공급 원가가 아니라 사용 목적에 따라 요금이 다르다.
산업용 전기를 싸게 공급해 기업을 지원한다는 정책 목표에 따른 것이었다.
그래서 몇 년 전까지 산업용은 원가 이하로, 주택용·일반용은 원가보다 높게 가격이 매겨졌다.
이 흐름에서 누진율 11.7배의 누진제가 시행됐다. 이런 정책이 경제 성장에 나름대로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후진국 시절 정책을 준(準)선진국 시대까지 유지해온 것은 문제다.
야간 가동 공장에 낮은 요금을 매긴 것도 특징이다. 24시간 발전량이 일정한 원자력 전기 소비량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 이득은 주로 대기업에 돌아갔다. 송전 거리를 따지지 않는 동일 요금 체계는 발전소 입지 지역에 불공평하다.
지방에서 생산한 전기를 받아 쓰는 수도권은 반대로 혜택을 입었다. 정치 논리가 공정성(公正性)을 희생시킨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전기 요금을 너무 낮춰놨다는 점이다.
주요 선진국에 비해 시장환율 기준으로 60~70% 수준이다.
전기료 억제를 위해 세금에서 발전 산업 분야를 우대했다.
아울러 사고·오염 방지비, 폐로(廢爐) 비용과 핵폐기물 처리비, 발전소·송전선로 입지 보상비 등이 발전 원가에 충분히
반영돼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 부지에 무리하게 많은 설비를 밀집시킨 것도 발전 원가를 떨어뜨렸다.
충남엔 전국 석탄발전소 53기 가운데 26기가 몰려 있고, 고리·신고리 원전은 6기가 가동 중인데 4기가 추가
가동·건설 예정이다.
전기료가 싸다 보니 고급 에너지인 전기의 열량당 단가가 저급 에너지인 등유보다 낮게 유지됐다.
공장·비닐하우스들은 에너지를 석유에서 전기로 전환했다. 그러면서 전력 수요가 폭증해 발전소가 모자라게 됐다.
이것이 2011년 9월 순환단전을 야기한 원인이다. 낮은 전기 요금 탓에 1인당 전력 소비량은 어지간한 선진국들보다
훨씬 많다. 제철소에서 철을 녹이고 소금 기업에서 바닷물 정제하는데 전기 쓰는 나라가 됐다.
제도는 한번 만들면 기득권 구조가 형성돼 고치기 힘들어지는 일종의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을 갖는다.
누적된 요금 왜곡을 단박에 고치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더라도 장기적으로 가격 체계를 정상화한다는 방향 설정은 있어야 한다.
정치권이 앞장선 전기료 누진제 개편은 눈앞 불만만 털어내자는 미봉책이다.
한전 영업 이익이 작년에 이어 올해도 10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한전 누적 적자는 100조원이나 된다.
저유가가 낳은 일시적 이익금을 갖고 전기료 낮추는 데 쓰는 것은 포퓰리즘이다. 이런 식이면 에너지 효율화와
신재생에너지 육성은 더 멀어진다.
전기료 책정을 정치인들이 좌지우지해 생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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