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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아름다운 약속

바람아님 2016. 12. 27. 23:38
국민일보 2016.12.27 18:09

한 해의 끝자락에서 강렬하고 장엄하게 붉은빛을 뿜어내다 곧 넘어가고 마는 석양은 왠지 더 아름답고 더 처연하기만 하다. 마지막 노을이 져야 새해가 떠오르는 것인데 별똥별처럼 사라질 한 해가 너무 아쉬운 것일까. 작별을 고하는 석양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얼굴. 멋진 풍광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행복감을 느낄 때에도 함께 나눌 수 없어 안타까움에 떠오르는 얼굴. 엄마. 왜 엄마 이야기는 해도 해도 끝이 없고 생각할수록 많은 것이 새록새록 피어나는지. 새벽같이 일어나 못난 자식들 위해 드린 눈물의 기도가 내 가슴에 젖어 있어 언제나 내 영혼을 위로해주고, 그 어떤 별미보다 맛난 엄마의 된장찌개가 늘 보글보글 끓고 있기 때문일까.


작별의 때를 아신 것 같다. ‘우리 이다음에 천국에서 꼭 다시 만나자’는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세상의 틀을 다 털어내고 삶을 아름답게 마무리 지으셨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씀이 내 삶에 더할 수 없이 큰 위로가 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엄마를 그리워하며 너무 오래도록 마음 아파하지 않게 하기 위한 배려의 약속일 것이다. 그 말씀이 내 삶에 씨가 되고 꿈이 된 좋은 선물이었다. 마음의 길을 잃고 실타래 엉킨 듯 생각이 복잡할 때 그 약속을 떠올리면 생각이 단순해진다. 다만 흘러가는 것일 뿐인 세상 모든 것에 연연해하지 않고 새로운 꿈을 꾸게 하고 신비한 힘을 주는 약속이다.


내 존재의 의미가 된 엄마와 그 약속. 이제 함께 손잡고 걸을 수 없지만 나를 위해 내신 길을 따라 걸으며, 엄마가 그려놓은 밑그림을 완성해가며 나의 가장 좋은 파트너와 마음을 나눌 수는 있다. 솜털처럼 가벼운 눈송이에도 꺾이고 마는 나뭇가지처럼 연약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삶일지라도 새해에는 ‘나’에 대한 믿음을 갖고 ‘나’로서 ‘나’답게 살아가며 진정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고 싶다. 미처 몰랐던 나의 가치를 알뜰하게 찾아내 나의 진짜 모습을 잘 가꾸고 싶다. 감사하며, 미루지 않고 더 많이 사랑하면서 진지하고 신명나게 삶의 길을 달려가기 원한다.


김세원(에세이스트), 삽화=공희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