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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 香水만 맡아도 어떤 공연인지 알죠"

바람아님 2017. 1. 20. 18:05

(조선일보 2017.01.20 최보윤 기자)


- 또 연임 성공한 안호상 국립극장장

    

국내 최초 '레퍼토리 시즌제' 도입, 4년 만에 객석 점유율 89%로 확대

"예전엔 해외 스타 섭외에 온갖 수모… 이젠 우리 작품, 외국서 서로 사가"


"우리 창극과 무용을 해외 유명 극장에 돈 받고 판다는 게 극장장으로서 얼마나 뿌듯한지 모릅니다. 

과거 해외 유명 스타들을 데려올 때 당했던 수모를 생각하면…. 프랑스·독일에서 거둔 성공을 바탕으로 

내년엔 미국과 영국 공연계 심장부에 도전장을 내밀 겁니다."


안호상(58) 국립중앙극장장은 2012년 1월 부임했고 한 차례 연임했다. 

최근 다시 3년 연임이 결정된 그는 "잘 따라와 준 직원과 객석을 꽉꽉 채워준 관객 덕분"이라며 활짝 웃었다. 

1952년부터 1961년까지 8년 9개월 재임한 서항석 전 극장장 이래 최장 기간 국립극장을 이끌게 됐다.


안호상 국립극장장의 집무실 한쪽엔‘매진’봉투가 훈장처럼 붙어 있다. 그는“관객 반응을 보느라 매일 극장에서 서성였더니 

이젠 공연 스타일에 따라 관객들 향수 냄새가 다른 것까지 구분할 정도”라며 웃었다. /고운호 기자


그는 5년 전 부임했을 때를 떠올렸다. 

"면전에서 반발하거나 눈도 안 마주치려는 배타적인 분위기에 직원들이 괴물로 보였어요. 

그들도 저를 '제멋대로 뜯어고치려는 괴물'로 봤대요. 

그때 독하게 반항했던 직원이 제게 '다시 연임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대요. 고맙고 또 고마웠죠."


공연계에서 안 극장장은 국립극장을 '팔리는 작품'의 무대로 만든 개혁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예술의전당 공연기획부장·예술사업국장, 서울문화재단 대표 등을 거치며 극장 경영 전문가가 됐지만 관료주의에 젖은 

국립극장 체질을 개선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우선 관행처럼 이뤄지던 대관과 초청 위주 행사를 없앴다. 

국내 공연장 최초로 레퍼토리 시즌제(전속 단체의 기존 작품과 신작의 공연 기간을 미리 알려주고 시즌제로 판매하는 것)를 

도입했다. "더 이상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했죠. '국립'이란 명칭과 어울리지 않게 외국 작품에 자리를 내줄 순 없으니까요. 

근본부터 흔들어야 했습니다. 전속 단원을 보유하고 있다는 장점도 십분 활용했죠."


직원 모두와 면담에도 나섰다. 식당 아주머니와 비정규직부터 '소원 수리'를 받았다. 

"20년 넘게 근무했는데 극장장 방에 한 번 와보지도 못했다며 A4용지 5장에 건의 사항을 빼곡히 적어온 직원도 있었죠. 

덜컥 겁도 났지만 바꿀 건 바꿔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의 정면승부는 성공했다. 3개월 만에 효과가 나타났다. 관객층도 확대됐다. 

한태숙 연출의 스릴러 창극 '장화 홍련'과 패션 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한 국립무용단 '묵향(墨香)'은 2030세대의 전폭적인 

지지로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2012년 9월 시즌제를 도입한 뒤 지난 8월까지 총 4회 시즌 동안 공연 227편을 선보이며 

관객 55만9550명을 모았다. 2011·2012년과 비교해 2015·2016년 객석 점유율은 65%에서 89.1%로 늘었다. 

유료 관객 점유율도 43%에서 62.2%로 상승했다. 안 극장장은 "부임 초반 매일 텅 빈 객석을 마주하는 악몽에 시달렸는데 

이제는 위험 감수를 즐기게 됐다"며 "예술 경영의 최고 목표는 전석 매진"이라며 웃었다.


안 극장장은 국립극장을 '컨템퍼러리 아트 무대'라고 강조했다. 

국립창극단 '변강쇠 점찍고 옹녀'나 국립무용단 '묵향'이 프랑스 등 해외 관객의 높은 호응을 이끌어내는 걸 보면서 

우리한테 통하면 세계에도 통한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우리 작품은 '얼~쑤!' 같은 추임새에서 보듯 대체로 관객 참여형입니다. 

요즘 현대 예술 트렌드가 관객의 체험과 참여잖아요. 

딱 우리 얘기 아닙니까? 우리 것으로 국내외를 들썩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