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일 문화부 부장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그래서 세속에서 가장 먼 암자가 설악산 봉정암이다. 몇 해 전 그곳에서 모성의 가장 간절한 소원과 기도를 만났다. 해발 1244m. 내설악 깊은 산중의 봉정암은 오름길에서의 만만찮은 고행을 동반해야 닿을 수 있다. 백담사에서 출발해 봉정암까지 왕복 22㎞의 산길은 등산에 익숙한 이들에게도 결코 쉽지 않다.
이 거친 길을 남루한 차림의 허리 굽은 할머니들이 온 힘을 다해 올랐다. 놀라웠던 건 할머니들이 암자로 향하는 수월한 수렴동 계곡 길을 버리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돼 몇 배나 더 힘든 오세암 쪽으로 오르는 길을 택한다는 것이었다. 오체투지와 같은 고행의 길. 세련된 등산복 차림의 젊은이들은 수렴동 계곡으로 날렵하게 질러 올라가는데, 평상복 차림에 운동화, 더러는 고무신을 신은 허리 굽은 할머니들은 더 거친 길로 기도하듯 고통스럽게 산을 올랐다.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할머니들이 깊은 산중 암자를 찾아드는 건 기도를 위한 것이었고, 그 기도는 당연히 자식을 향한 것이었다. 관절염으로 다리를 질질 끌다시피 산을 오르는 할머니에게 왜 굳이 어려운 길을 택해 고행처럼 산을 오르는지를 묻자 ‘쉬운 길로 오르면 기도를 안 들어 줄 것 같아서’란 대답이 돌아왔다. 고행으로 공덕을 쌓아 자식들에게 바치려는 이 숭고한 걸음을 어찌 ‘발복’만을 바라는 이기심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이렇게 오른 할머니들은 암자의 사리탑 앞에서 밤을 새워가며 3000배를 올렸다. 거기까지 올라온 것만으로도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3000배라니…. 그만큼 간절한 소원이 무엇이었는지 물을 수 없었지만 무너질 듯 절을 하는 뒷모습에 그만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리고 거기서 들은 전설 같은 이야기. 17년 동안 봉정암을 750번이나 올랐다는 칠순 할머니가 있다고 했다.
수소문 끝에 ‘만덕행 보살’이라고 불린다는 그의 근황을 들을 수 있었다. 그토록 간절한 기도를 바친 보살의 아들은, 그러나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중견 회사의 중간간부였다. 만덕행 보살의 750번의 고행과 기도는 다 헛수고였던 것일까. 계절이 두 번쯤 지나고 다시 봉정암을 들른 길에 스님에게 별렀던 그 질문을 던졌다. 스님은 대답 대신 만덕행 보살이 마지막으로 암자에 올라왔을 때 얘기를 꺼냈다. 마지막 봉정암에 오를 때 만덕행 보살은 아들의 등에 업혀 올라왔다고 했다. 혼자 몸으로도 숨이 턱턱 막히는 가파른 산길을 아들이 어머니를 업고 올라왔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간절했던 기도는 모두 이뤄진 게 아닐까.
고향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모든 자식은 ‘모성의 눈물’로 키워진다. 명절에 고향을 찾아가는 건 그 모성을 찾아가는 일에 다름 아니다. 설 연휴에 봉정암의 만덕행 보살을 떠올렸던 건 긴 귀성행렬 때문이었다. 어렸을 적 설날은 차고 맑았다. 섣달 그믐날 밤이면 어머니는 정화수를 떠놓고 초를 켰다. 어른이 돼서도 자식에 대한 염려와 기도는 늘 어머니의 몫이었다. 어머니의 긴 기도는 두 해 전에 끝이 났지만, 자식을 위한 기도를 이제 어머니의 이름으로 아내가 대신하고 있다. 어머니에게서 어머니로 기도는 그렇게 이어진다. 누구나 다 아는 얘기겠지만 세상의 모든 자식의 뒤에는 어머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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