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Why] 노트북 컴퓨터의 추억

바람아님 2017. 2. 5. 00:15
조선일보 2017.02.04 03:04

[마감날 문득]

이제는 동네 돌아다니며 확성기로 물건 사고파는 사람들 소리 듣기가 쉽지 않다. 어렸을 때 일요일 낮 대청마루에서 햇볕 쪼이며 책을 읽고 있노라면 "고장난 시계나 머리카락 팔~아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장난 시계를 사다가 뭘 하는지, 도대체 머리카락은 얼마나 잘라 내줘야 사가는지 알 수 없었다. 남편은 시계를 팔아서 산 머리빗을, 아내는 머리카락을 팔아 산 시곗줄을 서로 선물한 오 헨리 소설을 읽던 시절이어서, 시계와 머리카락을 동시에 사들여 가난한 부부의 사랑을 잔인하게 확인하려는 그 아저씨가 미웠던 것 같기도 하다. 그때 한국이 세계 가발 수출 1위 국가였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 알게 됐다.


어느 일요일 "냉장고, 컴퓨터, 노트북, TV 삽니다" 하는 확성기 소리에 귀 기울여 010으로 시작하는 전화번호를 외웠다가 전화를 걸었다. "안 쓰는 노트북 컴퓨터가 있는데 얼마쯤 받을 수 있나요?" 중고 가전제품을 사들이는 그분은 컴퓨터 생산 연도와 사양을 묻더니 "아유, 그거 얼마 못 드려요"라고 했다. 얼마쯤이냐고 몇 번 재촉하자 "한 3만원 드릴 수 있을까?" 했다. "알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은 게 벌써 한 3년 전이었던 것 같다. 그때 3만원에라도 팔았어야 했던 노트북은 지금 베란다에서 검은 가방에 든 채 영하의 날씨를 견디고 있다.


요즘 막 출시된 노트북 컴퓨터 광고를 보니 젊은 모델이 바닷가 모래사장에 노트북을 휙 던지다시피 하고 뛰어가는 장면이 나왔다. 이제 노트북을 휙 던져야 멋진 시대가 된 것이다. 신문사에 들어와 지급받은 첫 노트북은 흑백 화면에 오로지 워드프로세서 기능만 있는 것이었다. 당시 그걸 가방에서 꺼내들면 사람들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뭐하는 사람인데 컴퓨터를 들고 다니나' 하는 시선을 받았었다. 그런 시선에 우쭐했던 치기(稚氣)로 험하고 고된 사회부 기자 시절을 견딘 것 같기도 하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책을 꺼내 읽으면 스마트폰 들고 있던 사람들이 다들 쳐다본다. 아직도 종이책을 들고 다니면서 읽는 사람이 있나 하는 얼굴들이다. 노트북 꺼냈다고 시선 받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