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性 ·夫婦이야기

"세상에, '강간할 권리'라니?"

바람아님 2017. 2. 23. 23:16
프레시안 2017.02.21 08:37

[이변의 예민한 상담소] 성매매 종사자의 인권 <下>


가끔씩은 마음 속 생각과 외부로 표현되는 생각 사이에 괴리가 생긴다. 수사관들은 이런 고충을 겪는 대표적인 직업군이다. 의욕이 클수록 격무에 시달리고 일상에서 세련되질 기회는 줄어든다. 어떤 경계선 위에 서 있는 사람들, 대표적으로 성매매 종사자들 또는 동성애자들은, 그간 다수자들이 저지른 차별에 상처가 깊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두고 받아들이니 마니 말이 많지만, 정작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희가 뭔데 우리를 받아들이니 마니 하는 건지 불쾌한 일이다.

다행히 대개의 사람들은 이런 소수자들을 인식하면서도 직접 편견을 드러낼 일이 적다. 하지만 일선 수사관들은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이런 소수자들을 만난다. 이들을 위해 수사를 하는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이들이 가진 상처를 건드리게 되는 일들이 생길 수 있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아도 편견을 갖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깊다보니 수사관들의 질문이나 표현에 민감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수사관들의 입장에서는 당사자들의 특수성에 대해 알아야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꼭 물어야만 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생기는 소통의 간극은 수사관 입장에서는 답답함으로 당사자 입장에서는 상처와 걱정으로 남는다.

1차 대질 신문이 있던 날, 여성과 강간을 한 남성, 그의 변호인, 그리고 담 당수사관과 5시간 넘는 대면을 했다. 대질 신문이 시작된 지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아 의뢰인 여성이 왜 '수사관이 자신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다'는 걱정을 했는지, 수사관은 왜 자꾸 여성이 불편해 할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수사관은 여성에게 유흥업소 종사자가 손님과 모텔을 가는 것은 소위 '2차'라고 불리는 것이고, 그것은 합의된 성관계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냐, 처음부터 강간을 당했다면 도망가면 될 것을 녹음을 한 이유가 뭐냐를 집중적으로 물어봤다. 그간 '2차'를 얼마나 나갔는지도 물어봤다. 남성에게는 혹시 성적 취향이 사디즘 같은 것인지, 그런 이유로 성매매를 하는 것인지 등을 물어보기도 했다.

여성 입장에서 보면 수사관이 자기가 당한 일을 강간이 아니라 성매매로 이미 판단하고 있거나 판단하려는 것 같고, 성매수 남성은 성매매 여성의 동의에 상관없이 자신의 가학적이거나 변태적인 성적 취향을 풀어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인가 우려를 갖기 충분해 보였다.


반면에 수사관의 입장에서 보면 가해 남성이 실제로 여성을 강간했는지 진위를 확인하고 범죄 성립 여부를 판단해야 하고, 가해 남성이 범죄 성립을 부인하기 위하여 변명하거나 거짓말을 할 핵심 사안에 대하여 대응이 필요한 한편 정말 피해가 맞다고 수사 보고를 하기 위한 전제로 검사나 향후 판사가 고민할 부분에 대해 확인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안타깝게도 여성은 위축돼 있다 보니 수사관의 질문에 반감과 절반의 포기를 내비치고 있었고 수사관은 여성이 불편해하고 적대하는 것을 알면서도 필요한 대답이 나오질 않으니 답답해하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수사관과 여성이 모두 있는 자리에서 여성이 불편해하는 질문이 나올 때마다 여성에게 수사관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설명해주고 대답을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해줄 것을 조언했다. 여성은 비로소 질문의 의도가 조금이나마 이해되기도 하고 옆에 변호사가 있는 것이 안도되기도 하니 대답을 제대로 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수사관도 여성이 대답을 성의있게 하니 마음이 놓이는 한편 여성이 어떤 측면에서 오해를 하는지를 이해했다. 분위기가 누그러지는 것이 감지되자 수사관에게 녹취록을 통해 분명하게 확인되는 사안은 피해자에게 중복해서 질문하시지 말고 가해자에게 물어봐달라고 부탁했다.

수사관과 여성 사이의 막힌 소통을 어느 정도 풀리고 나자, 녹취록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된 가해 남성이 여성에게 사과하고 싶다고 말했다. 남성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미안하다고 말을 했다. 여성은 가해 남성의 부인으로 피해자 조사를 2번이나 받고도 대질까지 하게 된 상황인데다가 그 날의 후유증으로 가해 남성과 한 자리에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고 있었다. 여성을 대신해서 가해자 남성에게 "강제로 한 것 같지도 않고 기억도 안 나는데 뭘 사과한다는 거냐, 강간한 것을 사과하거나 강간한 게 아니면 사과를 할 게 아니라 화를 내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이렇게 사과 아닌 사과를 한다면 향후 어떤 합의 조건을 내세워도 절대 합의할 생각이 없으니 차라리 범죄를 계속 부인하라는 의사도 덧붙였다.

한편 여성에게 2차를 강요했던 업소의 '마담'은 이 사건의 참고인으로 수사를 받게되자 자신이 성매매를 알선하거나 강요한 책임을 피하기 위해 자신이 여성에게 2차를 강요한 적이 없고 오히려 여성이 적극적으로 2차를 나간 것이란 진술을 했었다. 


마담은 대질 신문 자리에도 나와서 같은 주장을 하고 있었다. 마담은 여성이 고소를 한 후 고소를 취하하라고 수십 통의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었다. 여성은 서슬 퍼렇게 언성을 높이는 마담에게 기가 막혀하면서도 마담에 대한 두려움으로 제대로 대꾸조차 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수사관에게 그간 마담이 여성에게 보낸 문자 내역을 제출하면서 양해를 구하고 발언을 청했다. 마담에게 향후 여성에게 일체의 문자나 연락을 취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이걸 어기면 불안감 조성 등의 혐의로 고소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통보했다. 마담이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아도 기소될 사건은 기소가 될 것이니, 마담이 여성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면 향후 수사기관이 성매매 알선이나 강요로 수사를 할 때 우리 역시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 대질 신문을 끝으로 가해자가 자백하고 반성의 뜻을 전했고, 여성은 더 이상 대질의 자리나 법정 증인석에 가지 않아도 되게 사건이 마무리 되었다. 여성은 처음에 돈을 받고 합의하지 않겠다고 했었으나, 남성이 꾸준히 진지한 반성문을 보내오고 합의안을 제시한 끝에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합의서에 도장을 찍어주었다. 합의서에 도장을 찍는 날, 남성을 앉혀놓고 여성과 함께 작성한 편지를 여성을 대신해서 읽어줬다. 편지의 내용은 "더 이상 이 사건 때문에 수사기관이나 법정에 나가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합의하기로 결심했다. 당신의 죄는 내가 용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 긴 시간 속죄하고 반듯하게 살면서 신에게 용서받기 바란다"라는 것이었다.

사실 여성은 가해 남성과의 합의에 그닥 적극적이지 않았다. 내게 의견을 구했었고, 합리적인 내용의 합의 안을 제시했을 때 여성에게 합의를 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그 이유는 합의금이 대단히 거액이어서도 아니었고 처벌받을 남성의 처지가 딱해서는 더더군다나 아니었다. 몇 번의 진지한 거절이 오가던 끝에 남성의 사과와 합의 안이 어느 정도 받아들일 정도의 수준에 이르기도 하였지만, 여성이 호의는 적고 호기심은 만발할 수사기관이나 법정에 나가야 할 것이 안쓰러웠다. 남성이 한 행위가 범죄로 인정되고 처벌을 받는 것과 그 과정에서 여성을 피해자로 존중하고 배려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정도의 문화가 우리 법조계 안에 제대로 안착해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기 때문이었다. 여성은 내 조언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사건은 끝났다.

성매매가 불법이라거나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성매매 종사자의 인권이 존중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성매매를 하는 것과 성적 자기 결정권의 포기도 같은 의미이기는커녕 비슷한 의미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들을 향한 비뚤어진 편견은 쉽게 성범죄로 이어지고, 그래서 이들은 일상적인 만남에서보다 훨씬 더 많이 성범죄에 노출된다. 그리고 이러한 범죄를 평가받는 자리에서도 자신이 당한 것이 성범죄였음을 소명하는데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나 성매매 여성을 때리거나 강간할 권리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폭행이나 강간은 누구에 대해서나 명백하고 동일한 범죄다. 지금 우리 사회는 "그러니 누가 너더러 그러래"라고 해오던 약자나 소수자의 피해에 대한 책임 전가를 돌아봐야 할 때이다. 범죄에 대한 주의 의무는 가해자에게 있다. 피해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 영화 <강남 1970>의 한 장면. ⓒ모베라픽처스



이은의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