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엄청난 비용을 치를 것
그 공통점은 '작렬하는 뒤끝'
예견되는 칼바람·피바람 숙정
그 비용은 국민이 지불한다
아슬아슬한 겨울이 지나고 조마조마한 봄이 왔다. 꽃망울 터질 조바심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만, 한쪽 진영을 완전 소개(疏開)해 다른 영토로 투항하라는 운명적 결단이 곧 내려질 것이기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1주일 남짓, 평의(評議)에 돌입한 헌재 굴뚝에서 어떤 연기가 피어오를까.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처럼 검은 연기에 와인 한 잔 마시며 느긋하게 기다리거나 흰 연기에 교황 탄생을 환호하는 축포를 터뜨릴 그럴 계제가 아니다. 흰 연기(인용)가 피어오르든, 검은 연기(기각)가 새어나오든 한쪽 광장은 겨우내 달궜던 분노의 화기를 연소시킬 출구가 막힌다. 굴복할 진영의 분노를 어찌할 것인가. 자제력이 문제다. 법치는 승복이 생명이지만 한껏 끓어오른 화기가 자제력의 벽을 뚫으면 파열이고, 담장을 넘으면 충돌이다. 그 결과는 자해일 수도, 가해일 수도 있다.
인용과 기각, 두 개의 시나리오는 모두 엄청난 비용을 치를 것이다. 탄핵사태가 시작된 때부터 이미 고지서가 우리에게 배달되었다. 고지서 발행자도 국민이고, 납부자도 국민이다. 권력을 사적으로 유용한 지도자와 무능한 정치를 끝내는 비용이고(인용), 그런 정치를 한동안 다시 연장해야 할 비용이다(기각). 두 동강 난 나라는 이미 두 개의 광장이 지불한 기본입장료에 불과하다. 무엇을 더 지불하게 될까?
기각 시: “이건 피바람이다. 특검이 단죄했던 죄인들은 모두 복권된다. 박정희와 박근혜는 성인 반열에 오른다. 보란 듯 구치소를 걸어나오는 최순실은 역모죄로 수감되는 고영태 일당과 엇갈린다. 특검의 복덩이 장시호는 특수 괘씸죄로 독방 신세. 김기춘은 청와대 특별고문, 우병우는 검찰총장으로 복귀한다. 우병우는 특검에 오랏줄을 날리고, 특검에 줄선 검사들을 솎아낸다. JTBC는 폐쇄 위기에 몰리고 언론방송에서 깨춤을 췄던 교수와 방송인들은 블랙리스트 행(行). 문화계 그것보다 두 배는 길다. 출국금지령이 내려져 공항은 한산하다. 태극기집회 집행부는 국가유공훈장, 태극기시위에 안 간 고위 공직자들은 유배형이다. 시민혁명 운운했던 야당 대선주자들은 감찰 대상. 국회가 사생결단 막겠지만 그래봤자 정보정치는 누구도 막지 못한다.”
두 시나리오의 공통점은 ‘작렬하는 뒤끝’이다. 칼바람이든, 피바람이든 일대 숙정은 예견된 바다. 모두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지고 그 비용은 국민이 지불한다.
국가의 개점휴업이 반년을 넘겼다. 보이지 않는 손실은 기하급수적으로 증식 중인데, 국가의 운(運)을 고갈시키는 무서운 통첩이 속속 발령되고 있다. 사드 보복에 나선 시진핑은 한국 여행 금지령을 내렸다. 한·중 관계가 얼어붙었다. 트럼프는 아예 북한 예방타격을 조준하고 있고, 한·미 FTA 재협상을 만지작거린다. 예방타격이란 불시에 북핵 시설을 포격하는 것이다. 한반도는 전쟁가능국 1순위로 등극했다. 발 빠르게 움직인 아베는 느긋하다. 패착에 빠진 한국호(號)는 표류 중, 정권이 바뀌면 강경 친노그룹이 트럼프를 살짝 미치게 만들지 모른다. 칼바람, 피바람이 ‘정상 국가’를 회복하는 비용이라면 기꺼이 치르겠는데, 그 어느 것이든 ‘뒤끝 정치’가 분단국 남한을 또 분단할까 두렵다.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리스트·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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