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7.02.07 01:01
시대 교체의 논리 공유 않은 채
지지율로 결딴내는 대세론은
의상만 바꾼 박근혜 정권의 재현
한강을 걸어서 건넌 기억이 아득하다. 차로 달리니 순식간에 스칠 뿐이다. 강변 사람들에게 그 풍경은 1억원짜리 뷰다. 본래 한강은 정치적이었다. 서산대사가 점지한 ‘한수 북(漢水 北) 천도’에 정도전은 시대 교체라는 큰 의미를 부여했다. 시대 교체는 연호를 바꾸는 것, 통치 양식과 시간의 무늬를 다시 그리는 것을 뜻했다. 부패한 귀족을 쫓아내고 재지사족 중심의 향권(鄕權)을 구축했다. 지배 이념도 성리학으로 교체했다. 민유방본(民惟邦本), 오직 백성만이 국가의 바탕이라는 이념 위에 군주와 사대부가 서로 견제하는 권력 구도를 만들었다. 한수 북의 중심, 광화문에는 민본(民本)과 민생(民生)의 긴장이 감돌았다.
초기 설계를 혁신하지 않으면 권력은 부패한다. 누군가 한강을 넘어야 할 때다. 규장각 각신들과 시대 교체를 궁리하면서 정조는 한강을 역으로 넘었다. 수원으로 천도해 시대 혁신의 숨통을 막는 경화사족을 따돌리고 새로운 지배 질서를 구축하려 했다. 시전 특권 폐지, 난전을 허용해 시장을 일으켰다. 한강에 떠 있는 경강상인에게 교역권을 부여했다. 요즘 말로 하면 신자유주의 정책을 전격 도입한 것이다. 시대를 교체하려는 정조의 도강(渡江) 행차에 강북에 운신한 사대부, 군부, 의금부가 저항했다. 권력 독점과 상인 규제로 챙기는 상납을 포기할 수 없었다. 화성을 짓는 중에 정조는 등창으로 죽었다. 시대 교체는 좌절됐고, 연호는 성벽에 묻혔다.
동료 장덕진 교수가 어느 인터뷰에서 현 정당들을 싸잡아 ‘유랑도적단’이라 표현했다. 필자는 ‘유랑사기단’이라 하겠다. 5년마다 현란한 말로 집권해 챙기고 떠나는 무리들의 그럴듯한 취임사와 옹색한 퇴임사를 수도 없이 겪었다. 해원과 수사(修辭)가 뒤섞인 대선 정국에서 한강을 건너야 할 시대적·세대적 명분은 하릴없이 하류로 흘러가 소멸된다. 광화문 민심이 납치될 위험을 누가 간파하는가? 50대 젊은 주자들은 저 허망한 지지율과 정당 벽에 갇혀 읍소만 하고 있다. 왜 뛰쳐나오지 못하는가? 권력을 바꿔야 한다면서 왜 기존 권력에 얹혀 있는가? 왜 50대 주자들이 손에 손잡고 연합 세력을, 미래 권력을 구축하지 못하는가? 그러면 정당도 요동칠 것이고, 영호남을 갈라 먹는 저 입발림 소리도 더 듣지 않을 것이다.
세금 더 안 내고 공공부문 일자리 늘린다고? 법인세 늘려 정의를 세운다고? 50% 면세자는 두고 상위층 증세로 복지비용 꾸린다고? 재벌을 압박해 일자리를 늘린다고? 입시 폐지 없이 제4차 산업혁명이 가능하다고? 누구 마음대로? 세계화 방정식은 그리 간단치 않다. 저출산·양극화·저성장이 그리 쉽게 풀리면 한강을 건널 필요도 없겠다. 노동시장에선 강성 노조, 생산시장에서는 독점 재벌을 잘 구슬려야 일이 풀린다. 원룸 50만 호쯤 만들어 값싸게 공급하면 청년들이 원기를 회복할 사회적 거점을 만든다. 십시일반 누진세로 충당하면 된다. 복지는 생산성을 향상하는 비용이다. 시대 혁신 논리와 국가 운영 원리의 전면 교체 없는 정권 교체는 촛불 민심을 변질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시대 교체의 큰 논리를 다 같이 공유·공감하지 않은 채 지지율로 결딴내는 대세론은 의상만 바꿔 입은 박근혜 정권의 재현에 다름 아니다.
특검의 사정 칼날이 시대 교체의 절박한 공감대를 확장해 주겠지만, 시대 혁신 논리를 제공하지는 못한다. ‘한수 북’의 썩은 사체를 해부해 환국(換局)과 해원의 구실로 갖다 바칠 우(憂)를 경계해야 한다. 광화문에 자리했던 의금부(義禁府)는 또 다른 의미에서 정치적이었다.
송호근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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