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향(肉香). 요즘 꽤나 잘나간다는 음식평론가의 입에는 이 단어가 입에 붙어 있다. 그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 주변 연예인들도 어느새 같은 말을 달고 산다. 평양냉면 육수를 마시면서, 잘 구워진 쇠고기를 씹으면서 "육향이 느껴진다"고 표현한다. '고기에서 나는 특유의 냄새'를 말하려나 보다.
국어사전에서 육향은 '주로 여자에게서 나는 살 냄새'를 뜻한다. 사람 냄새다. 아름다운 여성에 대한 남성들의 동경이 담긴 표현이다. 미식가가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먹으며, 여자의 살냄새를 떠올리지는 않을 터. 그들의 언어는 적절하지 않다. 그냥 '고기 냄새', 이를 굳이 향이라고 한다면 '고기향'라고 해야 할까.
쇠고기, 돼지고기, 말고기, 양고기, 닭고기, 염소고기, 오리고기, 토끼고기. 이들을 냄새는 다르다. 또 나이별로, 부위별로, 요리에 따라 달라지는 냄새를 '육향'이라는 한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미식가에게 '육향'이란 표현은 스스로 미식가가 아님을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우향(牛香), 돈향(豚香), 양향(羊香) 같은 말을 만들어내면 조금 더 나아지려나.
미식가들은 왜 '냄새'라고 하지 않고, '향'이라는 말에 집착할까. 냄새라는 단어가 너무 넓은 의미로 쓰여서일까, 향이라는 말이 주는 고귀함 때문일까. 아니면 미식가의 '겉멋'일 뿐일까. 고기에서 나는 냄새는 분명 향과는 다르다. 군침을 돌게 하지만 달콤하거나 싱그럽지는 않다. 냄새와 향은 다르다.
향을 간직하기 위해 향수(香水)가 만들어졌다. 향수를 영어로는 퍼퓸(perfume), 프랑스어로는 빠르푀(parfum)로 쓴다. 향수 원액의 농도에 따라 퍼퓸, 오드퍼퓸, 오드뜨왈렛, 오드콜로뉴 등으로 나눈다. 향수와 관련된 말들은 영어와 프랑스어가 혼용된다. 퍼퓸은 영어인데, 오드(eau de)는 'water of'와 같은 의미의 프랑스어다. 뜨왈렛은 프랑스식으로 발음한다. 콜로뉴는 독일 쾰른에서 유래했는데, '코롱'이라고도 부른다. 명칭에서 느껴지듯 향수는 여전히 프랑스산이 최고로 꼽힌다.
향수는 매혹적이면서도, 허영심을 자극한다. 마릴린 먼로는 '잘 때 무엇을 입고 자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단지, 샤넬 넘버5"라고 답했다. 남성들이 먼로의 잠자는 모습을 상상하는 동안 여성들은 먼로의 향수를 사기 위해 줄을 섰다. 향수가 산업으로 발전한 시기는 17세기 프랑스의 루이 14세 시대였다. 프랑스 남부 그라스 지방은 피혁제품을 주로 생산했는데, 가죽 특유의 악취를 없애기 위해 향료를 먹였다. 19세기 중엽 화학합성 향료가 개발되면서 향수의 대량 생산이 가능해졌다. 천연향료만 있던 시절에는 귀족계급의 전유물이었지만 누구다 향수를 가질 수 있게 됐다.
그라스 지방은 영화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Perfume:The Story Of A Murderer)'의 주요 무대다. 탁월한 후각을 갖고 태어난 주인공 장바티스트(벤 위쇼)는 냄새로 세상을 본다. 세상 모든 것의 냄새를 향수병에 담기 위해 파리를 떠나 그라스로 향한다. 결국, 그는 아름답고 젊은 여성들의 육향을 모아 향수를 만들어낸다. 모든 이를 사랑에 빠트리는 향수다.
코로 맡는 향기만 달콤할까. 사람에게는 사랑을 나누고, 자비를 베풀고, 배려하는 마음의 향기도 있으니 말이다.
조영주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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