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상의 수많은 강 가운데 루비콘강만큼 널리 알려진 강도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이름과 역사적 의미만으로 그렇다. 실제로 이탈리아 여행 중 루비콘강에 가본 사람들은 그 규모에 실망을 금치 못한다. 이탈리아 북동부 지역을 동류해 아드리아해로 흘러드는 작은 강인데 서울의 양재천보다 못한 실개천에 가깝다. 그 위에 놓인 다리 한쪽에 카이사르의 동상이 서 있어 이곳이 오랜 역사의 현장임을 말해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 속의 루비콘강이 현재 어느 강인지 확실치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 고대 로마시대 갈리아 원정에 나선 카이사르는 탁월한 군사적 역량을 발휘해 로마의 영토를 갈리아 전역으로 넓혔다. 영향력이 막강해진 그는 로마 시민들에게도 인기짱이었다. 위협을 느낀 로마 원로원은 그에게 원정을 마치고 로마로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원로원의 의도는 뻔했다. 로마 시내로 가는 중간인 루비콘강은 로마법 상 군대를 이끌고 넘을 수 없었다. 군대 없는 그를 죽이려는 것이었다. 이를 잘 아는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유명한 말과 함께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강을 건넜다. 다음 스토리는 알려진 바대로다.
▦ 그 이후 돌이킬 수 없는 결단의 대명사가 된 루비콘강이 요즘 우리 주변에 너무 흔하다. 엊그제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가 루비콘강을 건너 민주당을 탈당했다. 지난해 말 유승민 김무성 등 비박계 의원들이 새누리당을 집단 탈당했을 때도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했다. 6일 밤 사드 발사대가 미군 C-17 대형 수송기에 실려 오산 공군기지에 도착한 순간도 주한미군 사드 배치의 루비콘강 건너기에 비유됐다. 목숨을 걸고 건너는 루비콘강이 자주 등장하는 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위기 상황이라는 뜻일 터이다.
▦ 오늘(10일) 우리 앞에는 또 하나의 루비콘강이 가로놓여 있다. 길게는 6개월, 짧게는 92일에 걸친 국정농단, 탄핵정국의 혼란을 끝내기 위해 반드시 건너야 하는 강이기도 하다. 어떻게 건너느냐에 따라 박근혜 한 사람의 운명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운명이 갈린다. 8명의 헌법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이 헌법정신과 법률 그리고 법관의 양심에 따라, 나아가 다수 국민의 뜻을 좇아서 현명한 결정을 내려줄 것으로 기대한다. 우리에게는 고대 로마 시대 루비콘강보다 훨씬 더 오래, 더 중요하게 기억될 역사가 될 것이므로.
이계성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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