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를 대표하는 최고의 산수화(4)
작가 : 김명국(金明國)
제목 : 사시팔경도(四時八景圖) 4폭
언제 : 1662년
재료 : 화첩 비단에 이금 각 271 x 257 m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김명국은 17세기의 조선화단에서 여러 분야에 두루 뛰어났던 화원(畵員)으로 도석인물(道釋人物). 초상. 불탱(佛撑) 및
산수에 이르기 까지 다방면에 걸쳐 수작(秀作)을 남겼다. 당시 화단에 크게 유행했던 절파계(浙派系) 화풍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일뿐더러 조선시대에 있어 흔치 않은 선종화(禪宗畵) 계통의 그림도 남기고 있다.
이 그림은 이금산수(泥金山水)로 사계절을 8폭에 담은 화첩 중 초춘(初春). 만춘(晩春). 초하(初夏). 만하(晩夏)의 4폭이다.
각 계절마다 두 폭씩 8폭으로 꾸미는 것은. 조선전기에 있어서는 필자 미상의 소상팔경도나 안견 전칭의 사시팔경도가 현존되어
일찍부터 그려졌음을 알 수 있고 중기에는 이불해의 전칭작이나 이징의 작품이 전래되고 있으며 후기에는 정선, 최북. 강세황.
심사정. 등에 의해 줄기차게 그려졌다. 이 그림은 2폭씩 한 쌍을 이루되 각기 좌우에 치중하여 중앙을 비우는 화면 구성을
이루고 있다.
初春은 오른쪽으로 비중을 둔 그림이다. 春景에는 수면을 비교적 좁게 나타냈고 물결이 잔잔하며 전경 에 나타난 수종은
덩굴이 감긴 노송으로 되어있다. 晩春에 이르면 버드나무가 전경에 등장하여. 우중임을 알려주고 물살이 다소 높아져 있다.
晩夏는 야경으로 보름달이 중천에 떠 있으나 전경의 나무들은 바람에 크게 흔들리며 사뭇 동적으로 나타나 있다.
김명국은 산수에 있어 소방한 절파계 화풍만이 아니라 전기화단의 안견화풍도 오히려 노년기에 접어들어 그리고 있어
사시팔경도 화첩 및 남궁연 소장 화첩들은 그의 또 다른 면모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들이기도 하다. 신위가 김명국의
그림에 쓴 제발에 언급했듯이 백년안에 나오기 힘든 화가로서 17세기에서 활동이 두드러진 가장 괄목 할만한 화원 이었다.
작가 : 김명국(金明國)
제목 : 달마도(達磨圖)
언제 : 17세기 중엽
재료 : 족자 종이에 수묵 830 x 582 m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김명국은 절파풍(浙派風)의 화가로 유명하지만, 선종화(禪宗畵)에서도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그 중에서도 이
달마도는 조선시대의 선종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원래 이 그림은 일본에서 유전하던 것인데, 8.15해방 후에
구입해 왔다.
따라서 작품의 제작시기는 그가 통신사의 수행화원으로 도일했던 1637년과 1643년의 어느 해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세렴(金世濂)의 해사록에 의하면 그는 사행(使行)기간 동안 일본인들의 그림 요청이 매우 심해서 이에 응하느라 밤잠조차
제대로 자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남인 도인으로서 6세기 경 중국에 건너가 선종의 시조가 되었다는 보리달마(菩리達磨)의 모습은 선종화의 중요 화제(畵題)로서
즐겨 다루어지던 것이다. 여기서는 두포(頭布)를 쓴 달마의 상반신만을 묘사했는데,9년 동안의 면벽좌선으로 고양된 그의 내면
세계가 대담하고 힘찬 몇 번의 붓질로 잘 포착되어 있다.
옷 주름에 나타난 극도로 생략된 감필 북자국의 굵고 가는 선폭의 결과모양은 화면에 강렬한 인상을 부여해 주며 재빠른 필선의
속도에서는 작가의 활기찬 움직임이 느껴진다.
이렇듯 일기(逸氣) 넘치는 화풍은 오대의 석각(石恪)양식에 그 맥을 대고 있지만 호방하고 방일(放逸)했던 그의 기질과도
상통되는 바 크다.
작가 : 김명국(金明國)
제목 : 달마절로도강(達磨折蘆渡江)
언제 : 17세기 중엽
재료 : 족자 종이에 수묵 976 x 482 mm
소장 : 국립중앙박물관
해설 : 달마의 초상이나 행적은 선종화에서 즐겨 다루던 소재 였는데 이 그림도 그의 행적중의 하나를 묘사한 것이다. 6세기 초
중국에 건너간 달마가. 양(梁) 나라 무제(武帝)에게 최초로 설법하였지만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갈대잎을 꺾어 타고 양자강을
건너 위(魏) 나라로 갔다는 전설을 담고 있다.
한 줄기 갈대에 몸을 싣고 서 있는 달마의 얼굴은 튀어나온 광대뼈와 매부리코. 치켜 올라간 눈매로 매우 강하면서도 이국적인
인상을 풍긴다. 담묵으로 비교적 섬세하게 묘사된 얼굴에 비해 의복부분은 죽죽 그어댄 활달한 농묵의 필선으로 간략하게 표현
되었다.
추춤 거리는 곳이 없는 빠른 속도의 감필묘(減筆描)는 김명국의 세련된 기교를 말해준다. 이 같이 대담한 필선은 예리한 눈매와 더불어 달마의 농축된 선기(禪氣)를 성공적으로 표출시키고 있다. 전체적으로 왼쪽으로 진전하는 듯한 인상이면서도 옷자락의 끝단이 왼쪽으로 날리게 처리한 것은 필선 자체의 추상적 리듬에 치우쳐 사실적인 묘사에 위배된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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