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네 장의 사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의 중국, 시진핑의 중국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그 속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좋은 장면들입니다. 4월 11일 오후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 중국 최고 지도부 거처)에서 린정웨어(林鄭月娥, 캐리 람) 신임 홍콩 행정장관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의자부터 확연하게 차이가 납니다. 시 주석 의자엔 용 조각이 보이네요. 고대 중국에서 용은 황제를 뜻했지요. 캐리 람은 등받이도 없는 의자에 앉아 있습니다. 누가 봐도 주종 관계, 갑을 관계, 군신 관계 냄새가 나지요. 중국과 홍콩 관계 현주소입니다. 연출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다른 사진을 보시지요. 중국-홍콩 역학 관계가 더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2015년 12월 23일 량전잉(梁振英·렁춘잉) 행정장관이 업무 보고차 시 주석을 면담한 장면입니다. 캐리 람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렁 장관은 용의 자리에 앉은 시 주석에게 옆자리에서 보고를 하고 있지요. 역시 당시 홍콩의 종속적 지위를 확인시켜 줍니다. 항상 그랬던 건 아닙니다. 다음 사진을 보시지요. 한 달 전 시간으로 돌려보면 좀 다릅니다. 시 주석이 2015년 11월 18일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제23차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참석차 필리핀을 방문한 량전잉(梁振英·렁춘잉) 홍콩 행정장관을 접견한 장면입니다. 동등한 자리배치지요. 해외에서 만나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만, 돌이켜보면 이 때가 중국이 홍콩 행정장관에 대해 마지막 예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접견이 있은 후 렁 장관은 다시는 시 주석과 같은 라인에 앉지 못했습니다. 시간을 후진타오 주석 시절로 돌려볼까요? 2012년 3월 후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홍콩 행정장관에 당선된 렁춘잉을 축하하는 자리입니다. 해외가 아닌 베이징입니다. 누가 봐도 행정장관을 주석과 동급으로 예우하는 모습입니다. 실제로 후 주석은 재임 10년간 홍콩 행정장관을 수 차례 만났지만 자리 의전은 자신과 동급으로 맞췄습니다. 홍콩에 대한 중국식 ‘당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 주석은 왜 갑자기 국가 수반급으로 예우하던 행정장관을 성장(省長)이나 시장 급으로 격을 낮춰 대하는 걸까요. 이유가 있습니다. 영국의 영구 조차지였던 홍콩은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됐지요. 반환 협상 과정에서 중국 최고 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은 이후 50년간 홍콩에 대한 고도의 자치를 받아들였습니다.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입니다. 하나의 중국 아래 두 국가 시스템을 인정한다는 내용이죠. 하여 외교와 국방을 빼고 홍콩은 엄연히 한 국가와 같은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홍콩이 중국의 한 도시에 불과하지만 올림픽에 독자 팀을 보내고 각종 국제 기구에 가입할 수 있는 근거입니다. 중국이 행정장관에 대해 정부 수반 급 대우를 해왔던 이유입니다. 그러나 제도는 제도고, 현실은 다르다는 게 시 주석의 생각입니다. 홍콩에 고도의 자치를 인정해줬더니 독립파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겁니다. 2014년 행정장관 직선제를 둘러싼 홍콩 민주화 운동, 즉 '우산 혁명'이 대표적이지요. 보스 기질이 강한 시 주석은 이를 그대로 방관할 수 없다고 결론을 내린 겁니다.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겁박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사진 군사망]
특히 이 즈음 시 주석은 이미 당과 군을 확실하게 장악하면서 1인 권력체제를 굳히고 있었습니다. 또 중화부흥의 기치를 내걸면서 미국에 맞짱을 뜰 준비를 하고 있었지요. 강한 중국의 모습을 인민들과 국제사회에 홍보해야 하는데 1개 시장(홍콩 행정장관)에게 주석과 동급 예우를 한다는 게 거슬렸을 겁니다. 그래서 시 주석은 덩샤오핑의 외교 노선, 도광양회(韜光養晦·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실력을 키움)도 폐기하고 돌돌핍인(咄咄逼人·기세등등하게 상대를 압박함)으로 급선회합니다.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을 둘러싼 주변국과의 갈등, 미국에 대한 정면 대응 등 최근의 중국 외교 변화는 이런 맥락에서 나온 거지요. 앞으로 주변국에 대한 중국의 겁박은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지요. 조만간 과거 조공국 체제를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일부 중국 전문가들은 홍콩 행정장관의 배치가 주종으로 바뀐 2015년 말, 시 주석의 1인 지배체제가 사실상 완성 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합니다. 강해진 권력의 위상이 대외 의전에 그대로 담겨있다는 거지요. 시 주석은 '자리'를 외교적 메시지나 경고로 활용하기도 합니다. 최근 미중 정상회담에 매우 이례적으로 팡펑후이(房峰輝) 중국군 총참모장(합참의장)이 배석 했지요. 미국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폭을 할 경우 양국 군사적 충돌이 있을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으로 국제문제 전문가들은 분석합니다. 이를 한국에 적용해보면 중국의 사드 보복이 일과성에 그치지 않고 앞으로 더한 일도 있을 수 있다는 메시지입니다. 이제 한국 외교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칠고 투박한 중국을 상대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한국이 지금보다 천 배 만 배 정신차려야 한다는 뜻이지요. 미중 정상회담 당시 좌석 배치. 트럼프 배석 인원(트럼프 좌측 끝부터) 1. 디나 파웰 부 국가안전고문 2.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 3. 허버트 R. 맥마스터 국가안보보좌관 4. 윌버 로스 상무장관 5.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 6.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7.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8.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 DA 300 9.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 10. 제러드 쿠시너 백악관 선임고문 11.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 시진핑 배석 인원(시진핑 우측 끝부터) 1. 류허 중앙재경영도소조판공실 주임 2. 허리펑 국가발전계획영도소조 주임 3. 팡펑후이 중앙군사위 연합참모부 참모장 4. 리잔수 중앙판공청 주임 5. 왕후닝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6. 시진핑 국가주석 7. 왕양 경제부총리 8.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 9. 왕이 외교부장 10. 중산 상무부장 11. 딩쉐샹 시진핑 판공실 주임 [사진 중앙포토]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 주석의 왼쪽에 왕양 부총리가 앉은 것도 이례적이었습니다. 이전 정상회담에선 늘 비서실장 격인 리잔수 중앙판공청 주임과 왕후닝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이 좌우에 앉았지요. ‘좌 잔수, 우 후닝’라는 말이 나온 이유입니다. 한데 이번에는 리잔수가 시 주석의 오른쪽 두 번째로 밀렸고 대신 경제와 무역을 담당하는 부총리를 비서실장이 앉던 자리에 배치했습니다. 미·중 무역분쟁을 시 주석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동시에 올 11월로 예정된 제 19차 당대회에서 왕양의 정치국 상무위원 진입을 알리는 신호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시진핑은 자리 하나도 내치와 외치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차이나랩 최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