生活文化/그때그일그사람

테레사 수녀 '노벨상 받으면 빵을 몇개 살까'

바람아님 2013. 9. 8. 10:35


1979년 노르웨이 오슬로 노벨평화상 시상식장. 흰색 사리(인도 여성들의 전통의상)에 샌들 차림의 수상자는 조그맣게 읊조렸

다. “이 돈으로 빵을 몇 개나 살 수 있을까.” ‘평화’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도 이어졌다. “집에 돌아가 가족을 사랑해주세요.”

이날 노벨평화상 수상자는 테레사 수녀였다.

테레사 수녀는 1910년 8월26일 마케도니아 스코페의 알바니아계 가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아그네스 곤자 보야지우다.

사업가이자 정치인이었던 부친을 일찍 여의고 어머니를 따라 성당을 다니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8세 때 아일랜드에 있는

로레타 수녀회에 들어갔다. 3년간 교육을 받고 당시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로 파견됐다. 16년간 인도 아이들을 가르치며

세인트마리아고교 교장까지 지냈다.

이때까지는 여느 가톨릭 수녀의 삶과 다르지 않았다. 교장 시절, 피정(가톨릭 신자들의 수련활동) 길에서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테레사 수녀는 1947년 수도원을 나와 콜카타 빈민가로 들어갔다.

선교가 목적일 것이라는 세간의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검은 수녀복을 벗고 인도인으로 귀화했다. 인도 빈민 여성들이 입는 흰색

사리를 입고, 미혼모·고아들을 위한 집을 짓고 나병환자 마을을 만들었다. 1950년 ‘사랑의 선교회’가 결성됐고, 이때부터 테레사

수녀를 부르는 명칭은 ‘마더 테레사’가 됐다. 이후 사랑의 선교회는 130여개국으로 퍼져 나갔다.

 ‘빈자들의 성녀(聖女)’로 50년을 산 테레사 수녀는 1997년 의료진의 진료를 거부한 채 콜카타에서 눈을 감았다. 그의 나이

87세였다. 장례는 인도 국장(國葬)으로 치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