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양 섬나라 몰디브의 모하메드 나시드 전 대통령은 3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탈퇴를 선언한 것을 비판하며 “몰디브에는 사형선고”라고 했다. 유럽을 방문 중인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같은 날 프랑스 파리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을 갖고 “파리협정이 있든 없든 기후변화 대응을 계속해야 한다”며 “파리협정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교토의정서 체제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불참을 빌미삼아 중국이나 인도같은 ‘거대 개도국’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거부했고, 국제사회도 그들에게 면제권을 줬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미국을 뺀 세계’가 똘똘 뭉친 양상이다. 프랑스, 독일에 이어 중국도 “미국의 탈퇴 결정은 큰 실수”라고 비판했다. 트럼프를 옹호한 정상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뿐이었다.
트럼프의 결정은 미국 안팎에서 거센 후폭풍을 불러오고 있다. 트럼프는 “파리가 아닌 피츠버그”를 위해 파리협정에서 빠지겠다고 했지만, 쇠락한 공업지대를 대표하는 피츠버그를 비롯해 미국 187개 도시의 시장들은 트럼프의 결정에 상관없이 파리협정을 준수하겠다고 선언했다. 뉴욕, 캘리포니아, 워싱턴 주지사는 협정을 지키기 위해 ‘기후동맹’을 만들었다. 파리협정을 지키겠다고 약속한 주지사가 10명에 이른다.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파리협정이 지켜지도록 자신의 자선재단에서 2년간 1400만달러(약 157억원)를 기부하겠다고 밝혔다. 블룸버그는 “미국 시민들은 파리협정을 떠나지 않고 정부와 정반대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의 반발도 크다. CNN은 “최고경영자(CEO) 반란”이라고 표현했다. 실리콘밸리가 반란을 주도하고 있다. 시가총액 1위 기업인 애플의 팀 쿡은 물론 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경영자들이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유일하게 트럼프의 경제자문위원으로 남아있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도 자문위원을 그만두겠다고 선언했다. 로이드 블랭크페인 골드만삭스 CEO는 트럼프를 비판하기 위해 처음으로 트위터에 글을 올렸다. 제너럴일렉트릭(GE), 엑손모빌, 포드 CEO들도 자발적으로 파리협정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날 싱가포르에서 열린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파리협정 탈퇴에 대한 비난성 질문이 쏟아지자 “우리가 세상에 등을 돌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대사는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에 대해 미국이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항변했다. 윌버 로스 상무장관은 전날 NBC에서 “트럼프는 환경보호론자”라고 주장했다.
미국은 교토의정서 체제에도 동참하지 않았다. 트럼프의 탈퇴 선언이 곧바로 파리협정을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미국의 탈퇴가 가져올 가장 큰 문제는 리더십의 부재다. 기후변화 대응은 세계가 한몸이 돼 추진해야 하는데, 여기에 결정타를 날려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나서고는 있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를 아우르며 선도적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다.
중국과 유럽연합(EU)은 2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갖고 ‘기후 변화와 청정 에너지에 관한 공동 정상성명’을 채택할 예정이었다. 이는 중국과 EU가 미국 빠진 파리협정 체제의 주도권을 쥐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통상 문제를 둘러싼 이견 때문에 공동성명 채택은 무산됐고, 양측은 파리협정을 이행하겠다고 약속하는 데 그쳤다. 리더십 없는 세계를 보여준 단면이었다.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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