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현지 시각) 문재인 대통령 특사로 홍석현 한반도포럼 이사장이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다. 홍 특사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발언을 전하며 "(북한과 대화를 위해선) 북한이 핵·미사일 중지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선 '틸러슨 장관이 대화의 1차적 조건으로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내세웠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이례적 반응이 나왔다. 미 국무부 대변인이 '미국의 소리(VOA)' 방송을 통해 다음 날 바로 홍 특사의 발언을 반박한 것이다. VOA는 미 정부 산하기관이다. VOA는 대변인을 인용해 "북한과의 대화 조건에 대한 미국의 입장에는 아무 변화가 없다"며 "북한의 발전이란 목표는 오직 비핵화와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통해 이뤄질 수 있다"고 했다. 대화의 조건은 핵실험 중단이 아니라 폐기란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심지어 국무부는 홍 특사의 발언에 대해 "사적인 외교 대화"라고 했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을 지나치게 '대화'에만 초점을 맞춰 전했다는 불만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비슷한 일은 또 일어났다. 지난달 25일 민주당 윤관석 의원 등 여당 의원들이 미 국무부와 의회 인사 등을 만난 뒤 기자들에게 "미국이 4대 기조를 담은 대북 정책안을 확정했다"며 "북핵 문제는 최종적으로 대화로 해결한다"고 말했다. 4대 기조란 북한 핵보유국 불인정, 대북 제재 강화, 정권 교체 불시도, 대화로 해결 등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곧 미 정부가 군사 옵션을 배제하고, 북한과 대화를 원한다는 의미로 해석돼 국내에 기사화됐다.
그러자 VOA는 다시 국무부 대변인을 인용해 "미국은 국제적 대북 압박을 추진하고, 유연성을 발휘해 북한의 도발에 대응할 것"이라며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다"는 반박성 기사를 실었다. 군사적 옵션도 검토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또한 한국 의원들이 지나치게 대화와 교류에만 초점을 맞춰 자신들의 발언을 전했다는 생각 때문으로 풀이된다.
여당 의원들은 또 미국 측 관계자에게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남북 내부의 민족적 문제이고, 통일을 위해 필요하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는 첫 남북 정상회담이 열렸던 2000년대에나 통했던 논리다. 지금은 북한이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해 미국 본토를 타격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이다. 한국이 민족적 특수성을 강조하면 미국도 안보상 특수성을 내세워 독자 결정을 내릴 위험성만 커진다. 실제 공화당 실력자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은 지난 4월 말 청문회에서 "오늘 전쟁을 하게 되면 문제가 여기서 해결되지만, 미래에 전쟁을 하게 되면 미사일이 미국에 날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의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론은 단순한 엄포가 아니라 공화당 핵심에서 꾸준히 거론되는 주장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6월 중 정상회담을 한다. 문 대통령은 주요국에 특사를 파견한 뒤 "할 말은 했다"고 했다. 그러나 할 말은 한 외교에 대한 미국의 반응이 그다지 좋지 않다. 청와대의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하고 조심스러운 판단이 필요한 때다. 무엇보다 정상회담 후 미국에서 반박성 성명이 나오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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