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7.10.03. 01:00
최선의 방어가 핵보유라 생각해
미국이 북한을 선제타격하려면
최소한 중국의 묵시적 동의 필요
미국이 한반도 청사진 제시해야
중국은 비로소 자신의 패 꺼낼 듯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말폭탄 주고받기가 거의 군사적 협박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다가 자칫 우발 사태라도 발생할까 걱정을 낳는다. 프랑스는 긴장이 완화되지 않으면 평창 겨울올림픽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만큼 한반도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데 이 와중에 유독 냉정을 유지하는 나라가 있다. 중국이다. 미국의 대북 선제타격 운운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왜 그런가.
지난 4월과 8월의 한반도 위기설, 그리고 최근 북·미의 말폭탄 싸움과 상호 군사적 위협에도 중국이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태연할 수 있는 이유는 무언가. 일각에선 지정학적 설명을 제시한다.
중국이 완충지대로서의 북한의 지정학적 전략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바람에 북한과의 동맹을 방기하기는커녕 오히려 북한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에 사태를 냉정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진부한 해석이다.
진정한 해답은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지금의 북한 상황을 이미 경험했다. 미국의 원자탄 폭격 위협에서 미·소의 중국의 핵시설 및 산업시설에 대한 타격 위협까지 수도 없이 많은 위협을 받았지만 그 모두 현실화되지는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미·중·소 3각 관계에 답이 있었다. 3각 관계에서 어느 일방이 다른 일방을 굴복시키려면 제3자의 역할이 관건이다. 제3자의 협조나 묵인이 절대 필요한 것이다. 중국은 이 법칙을 역사적 경험에서 깨우쳤다.
바로 이 미·중·소 3각 관계로 인해 중국은 미국과 소련으로부터의 타격을 피할 수 있었다. 중국은 오늘날 북한이 처한 상황이 바로 과거의 중국과 같다고 본다. 북·미·중 3각 관계에서 미국이 북한을 타격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전제는 중국이 중립을 지키는 것이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과거 경험을 장래의 판단 근거로 삼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핵의 해법도 과거지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핵개발의 경위가 있듯이 그 발전 과정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주변국 모두 경험한 것이지만 한국만 겪지 못했다. 그래서 이들의 입장이 때로는 우리에게 낯설게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전쟁 당시 두 번(1950년과 53년)에 이어 대만해협 위기사태가 벌어진 55년, 그리고 2차 대만해협 위기사태가 터진 58년에도 미국의 핵폭격 협박을 받았다. 중국은 북한의 핵개발 이유 또한 미국의 핵위협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전쟁 이후 한·미 동맹의 성립으로 주한미군이 주둔하면서부터 북한이 미국의 핵위협을 절감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 가지 경로를 통해서다. 핵우산 제공과 전술핵 배치가 그것이다. 91년 전술핵은 철수됐지만 핵우산은 아직 유효하다고 본다.
핵개발국에 중도 포기란 없다. 왜냐하면 핵을 추구하는 나라는 현실주의 관념, 즉 힘의 정치에 홀려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핵억지력에 대한 신념은 투철하다. 핵위협에 대한 최선의 방어는 핵보유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외부 지원이 단절되고 또 국제사회의 강한 제재가 가해지며 국민이 굶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북한의 핵개발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핵야욕을 꺾기란 무척이나 요원한 일인 것이다.
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를 겪은 케네디 미 정부는 공산주의의 확장 전략에 분개한 터였다. 64년에 두 가지 전략을 추진했다. 베트남 전쟁의 본격 개입과 중국 핵시설 및 기반을 타격하는 것이다.
전자는 그해 8월 ‘통킹만’ 사건으로 현실화됐고 후자는 소련이 문서로만 존재하는 중·소 동맹을 들이대는 바람에 실패로 끝났다. 미국은 8월부터 중국 핵시설 타격에 대한 소련의 입장을 확인했다. 당시 미·소 데탕트 추진 분위기에 힘입어 소련의 묵인이나 협조를 기대했다. 그러나 소련이 국익을 운운하며 미국을 만류했다.
69년은 소련의 차례였다. 소련은 그해 3월 국경분쟁으로 중국과 충돌했다. 가을 들어 소련은 중국의 핵시설 및 기반 산업 폭격을 원했다. 이 역시 미국의 입장 확인이 필요했던 바, 미국은 제3차 세계대전 발발 가능성을 운운하며 반대했다. 소련은 부득이하게 계획을 접었다.
이같이 한 나라의 핵시설 타격은 자신만의 정치적 의지만으론 실현되기 어렵다. 주변국의 협조가 관건이다. 북한과 중국 역시 최소한 문서상으론 동맹이다. 미국의 대북 타격 의지에 중국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대미 억지력이 성공할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안다.
미·중 양국은 북한 핵시설과 기반에 대한 무력 타격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안다. 중국의 협조나 묵인이 반드시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한 타격 이후 미국이 사후 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은 반응할 필요조차 없다.
중국의 반응에 북한의 반격은 관건이 아니다. 어차피 북한으로선 지는 전쟁이다. 북한의 패전을 전제로 한 한반도의 새로운 운명에 대한 청사진이 관건이다. 이에 대한 사전 논의 없이 중국의 동조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역으로 중국 역시 사후의 한반도 청사진을 논의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아직 자신의 ‘패(구상)’를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이다. 북핵의 한반도 게임은 포커게임이다. 모두가 패를 움켜쥐고 있다.
여기에 올해 들어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합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분주하다. 막말로 여기저기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한데 기존의 플레이어들은 아직 반응이 없다. 아직 베팅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다음 패를 돌린 후 베팅은 시작될 것이다. 문제는 아무도 패를 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인내를 갖고 지켜봐야 한다. 승산이 있을 때 판돈을 걸어야 한다. 거는 곳이 군사적 타격이든, 강한 제재든, 대화든 승산이 있는 곳에 우리의 역량을 총동원해야 한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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