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15] '1500년 어둠' 견딘 기적, 신라 천마도

바람아님 2017. 11. 8. 07:08

(조선일보 2017.11.08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1971년 우연히 발굴된 백제 무령왕릉은 한국 고고학계에 예상치 못한 변화를 불러왔다.

이 발굴에 큰 관심을 보인 대통령이 신라왕릉 발굴을 직접 지시하면서 신라고분 발굴 붐이 일게 된다.

문화재관리국은 당초 길이가 120m에 달하는 98호분을 발굴하기로 했지만, 자신이 없었기에 인접한 155호분을

먼저 '연습 삼아' 파보기로 했다.


1973년 4월 6일 발굴이 시작됐다.

155호분은 98호분보다는 작았으나 지름 47m, 높이 12.7m의 크기여서 발굴이 만만치 않았다.

7월 3일 박정희 대통령은 발굴 현장을 찾아 98호분 발굴에 조속히 착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발굴의 무게중심이 98호분 쪽으로 쏠리는 듯했다.

그러던 차에 7월 15일 금제 관식 출토 사실이 언론에 대서특필되면서 155호분은 관심을 회복했다.

열흘 후 금관이 출토되자 이 무덤은 '왕릉급'으로 지위가 격상됐고, 김원룡 서울대 교수는 지증왕릉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런데 이것은 서막에 불과했다.

최고의 보물은 여전히 어두운 무덤 속에서 고고학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장니(障泥) 천마도, 국보 207호, 국립경주박물관, 길이(가로) 73.2㎝.
장니(障泥) 천마도, 국보 207호, 국립경주박물관, 길이(가로) 73.2㎝.


8월 22일 부장품 궤짝에 쌓인 말갖춤을 들어 올리자 그 아래에서 갈기를 휘날리며 하늘을 나는 모습의

천마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자작나무 껍질 위에 찬연한 색조로 그려진 유려한 그림 2장.

이 장면을 두고 발굴을 담당한 지건길 학예사는 "화공이 막 붓을 놓은 듯 생생함이 묻어났다"고 했고,

최병현 조사원은 "모두의 입에서 감탄의 신음이 길게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천마도 발굴로 이 무덤은 1974년 10월부터 천마총이란 새로운 이름을 가지게 됐다.


신라 회화가 1500년 동안 원래의 모습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었고, 돌무지와 흙더미로 구성된 봉분의 엄청난 무게를

견뎌낸 것은 실로 기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발굴 후 그림의 색깔이 일부 퇴색했고 그림 속 동물이 천마인지 상상의

동물 기린인지 논란이 일기도 하였지만, 천마도는 신라인의 예술 세계를 유감없이 보여주는 최고의 명작임이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