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72] 대규모 건축 사업이 神의 뜻이었다고?

바람아님 2013. 10. 9. 18:52

(출처-조선일보 2012.07.25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라가시의 왕 구데아의 상(像)'… 기원전 2100년경, 섬록암, 높이 93㎝,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구데아(Gudea)는 기원전 21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도시국가였던 라가시(현재 이라크 남부)의 왕으로 신(神)들을 위한 수많은 신전을 신축하거나 기존의 신전을 증축했다. 그는 건축 사업과 동시에 자신의 조상(彫像)을 만들어 그 모든 신전(神殿)에 봉헌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현재 전 세계에 퍼져있는 그의 상(像)은 27점에 달하고, 많은 상들의 표면에는 이를 만들게 된 동기와 과정 등을 자세히 밝힌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그중에서도 이 상은 머리는 사라졌지만 가장 긴 문장을 담고 있는 것으로, 그가 최고의 신(神) 닝기르수에게 바치는 에닌누 신전의 설계도를 무릎에 얹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에닌누 신전 건축은 구데아 재위 시 가장 큰 중점 사업이었다.

조각을 둘러싸고 빼곡하게 새겨진 글귀는 호전적이었던 이전의 왕들과 달리 겸손하고 신앙심이 깊은 구데아의 성격을 강조하고 있다. 두 손을 마주잡은 것 또한 신에게 공손함을 표시하는 메소포타미아의 전통적인 자세다. 따라서 이 상은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구데아를 대신해 신 앞에 서서 신전 건축을 허락받는 대리인의 역할을 했던 것이다. 후대인들은 이처럼 신과 대화하는 구데아의 상도 살아있는 거룩한 존재로 여기고 공물을 바치며 의식을 치렀다. 또한 명문에는 신전의 건설 자재들이 얼마나 광범위한 해외 각지로부터 조달되었는가를 설명하며 라가시의 위상을 선전했다. 이어서 이 사업이 순전히 신의 뜻에 의한 것이었고 법을 준수하며 이루어졌다는 것을 명시하고 있다.

구데아의 상은 이처럼 고대의 왕들이 대규모 건축 사업을 정당화하고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이미지의  Lagash-Statu of Gud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