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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당당한 개인주의가 우리의 미래다

바람아님 2017. 12. 2. 08:36

(조선일보 2017.12.02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사회학)


우리가 이룬 근대화의 기적, 공동체주의에 기대 달성했지만
나라가 다시 일어서려면 집단주의 떼法 떼唱에 맞서며
납세와 봉사 자기희생 등 개인의 책임과 윤리 진작해야


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사회학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사회학


얼마 전 교수 회의 때 '국군 장병 위문 성금'을 다음 달 봉급에서 떼겠다며 동의를 구해 왔다.

"어려운 환경에서 국가 안보를 위해 헌신하는 국군 장병의 노고를 위로"한다는 취지도 가상하지만

요즘처럼 바쁜 세상살이에 그나마 남에게 온정을 베풀 기회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그래서 그런지 이런 단체 선행은 그동안 관행처럼 굳어져 왔다.

아마도 조만간 연말 불우 이웃 돕기 성금을 내게 될 것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성금 사용 내용이 공개되는 경우가 많아, 한때 시끄러웠던 사회적 논란도 많이 가라앉았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 찜찜한 기분이 남는 것은 감출 수 없다. 우선 머지않아 복무 기간이 18개월로 짧아지고 병장 월급이

20만원을 넘어서는 OECD 회원국에서 아직도 국민 성금으로 국군 장병을 위문한다는 사실이 어쩐지 멋쩍다.

좀 더 근본적으로는 말이 '정성으로 내는 돈' 곧 성금이지 사실은 범정부적으로 부과되는 반(半)강제적 준(準)조세라는 점이

영 달갑지 않다. 돈이 아까운 게 아니라 선행의 자기 결정권 제약이 아쉬운 것이다.


물론 남을 위한 선한 행동을 각자의 판단과 선택에 맡길 경우 모두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길이 멀고 험하게

느껴질 수 있다.

시장 상황에서 이기적 동기가 사회적 협력 의사를 억누를 개연성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장 실패를 극복하는 데 공동체 주의가 반드시 더 낫다는 보장은 없다.

시장의 힘만으로 역부족인 공동체 건설에는 성숙한 개인주의가 오히려 유능할 수 있다. 시장경제가 발달할수록

약육강식 대신 사회적 협동을 위한 이타적 행동이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사람들이 이전보다 착해져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우리가 사회 윤리 구축을 통해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면 선진국은 개인 윤리의 성숙을 통해 공동체를 이루고자

하는 편이다. 그곳에서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과정에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그리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전통이 있다.

그런 만큼 비자발적 방식의 성금 모으기는 처음부터 상상하기 어렵다.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에도 굳이 '보이지 않는 손'이

동원될 필요가 없다. 복지 공동체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 역시 국민 모두의 십시일반(十匙一飯)이다. 그런 만큼 조세 부담률이

전반적으로 높을 뿐 아니라, 소득이 적으면 적은 대로 작게나마 세금 내는 일 자체를 당연한 의무로 여긴다.


작금의 우리 사회에 결핍되어 있는 것은 튼튼한 공동체의 모태라고 볼 수 있는 당당한 개인주의다.

국가 공동체, 민족 공동체, 도시 공동체, 지역 공동체 등 각종 거창한 담론이 별다른 실속 없이 대개 구호에 그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세기 한국 현대사는 국가 건설과 산업화, 민주화를 연달아 성취하면서도 근대적 인간형의 핵심에 해당하는

'개인'의 탄생을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다. 자결(自決)과 자조(自助), 자율, 자립 등의 가치를 최우선시하는 가운데

자신의 삶과 독대하고 자신의 운명에 직면하는 고독하면서도 자유로운 근대적 영혼 말이다.


여태껏 우리가 이룩한 근대화의 기적은 뭉치고 엮이고 쏠리는 연고나 집단의 힘을 빌린 측면이 많다.

그런 관성은 현재까지도 이어져 걸핏하면 공동체의 이름을 걸고 '떼법(法)'을 외치거나 '떼창(唱)'을 부르는 양태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공동체를 위한 실질적 기여에는 정작 무심한 편이다. OECD 평균 근로소득세 면세자 비율이

16%라는데 우리나라는 무려 48.1%다. 이는 많은 국민이 남의 돈으로 복지를 편하게 누린다는 의미다.

이런 점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인색한 우리나라 상류 사회도 크게 다를 바 없다.

선진국은 사회 지도층일수록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배려, 희생을 통해 품격 높은 개인주의를 발현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의 길 잃은 보수 또는 갈 곳 놓친 우파가 새로운 희망을 준비할 수 있는 지점은 개인주의의 재발견이나

재인식에 있다. 이를 통해 그동안 말만 화려하고 이론만 무성했을 뿐 지금까지 우리 역사에서 한 번도 제대로 걸어보지

않았던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길을 넓히고 닦아야 한다.

자신의 태생적 뿌리를 잊은 채 공동체주의의 틀에 갇혀 좌파와 집권 경쟁을 벌이는 한,

어쩌면 우파는 영원히 정치적 '2중대' 신세를 면하기 어렵다.

평등하고 자유로운 개인은 이념 문제가 아니라 인류 역사의 위대한 승리다.

지금 보수 정당은 그들이 들어야 할 무기가 무엇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