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핫 이슈

[강천석 칼럼] 한국 한반도 문제 主人 노릇 하고 있나

바람아님 2017. 12. 9. 09:03

(조선일보 2017.12.08 강천석 논설고문)


생각할 수 없는 것 생각하지 못하면 생각하는 사태 벌어져
北 핵·미사일 개발 一理 있다던 사람들 지금 무슨 생각 하나


강천석 논설고문강천석 논설고문


무슨 문제든 '내가 주인이다' 하고 달려들어야만 해결의 실마리가 풀린다.

'주인 눈 두 개가 하인(下人) 손 천 개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는 서양 속담도 그런 뜻이다.

자신을 주인 자리에 올려놓고 생각해야만 어제를 기억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

손님에서 주인으로의 인식 전환은 자기 혁명이다.

자기 나라 문제를 자신이 붙들고 씨름하지 않는 나라는 손님으로 밀려난다.


올 한 해 대한민국은 주인 노릇을 제대로 했을까.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라는 거울에 비춰 보면 어떤 모습일까.

엊그제 중국 관영(官營) 신문은 이렇게 썼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난다면 가장 먼저 북한 공격을 받는 건 한국이고 이어 일본 및 아태(亞太) 지역 미군 기지"라고 했다.

"전쟁이 날 경우 핵 오염 위험을 배제할 순 없지만 지금 북서(北西) 계절풍이 부는 겨울이라서 중국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도 했다. 이에 앞서 북·중 국경 지역 신문은 핵전쟁 대응 요령을 특집으로 내보냈다.


미국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는 단계'에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을 생각하는 단계(Thinking About the Unthinkable)'로

들어서는 듯하다. 귀에 익은 북핵 선제(先制)공격론도 주한(駐韓) 미군 가족 철수 주장과 함께 거론되자 달리 들리기 시작했다.

미국 전문가들은 앞으로 3개월이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북한 핵미사일 기술 완성의 결정적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그 시한(時限)이 평창올림픽 개최 시기와 겹친다. 미국이 올림픽 대표단 신변 위험을 들어 불참(不參) 결정을 내린다면 대부분

유럽 국가들이 그 뒤를 따르고 평창은 그대로 공중에 뜬다. 그럴 리 없다고 믿지만 미국의 자세에선 절박함이 묻어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6일 종교 지도자와 모임에서 "북핵 문제는 북·미(北·美)가 중심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핵 해결을 위해 압박도 해야 하지만 선제타격으로 전쟁이 나는 방식은 결단코 용납할 수 없다"면서

"우리 동의 없이 한반도 군사 행동은 있을 수 없다고 미국에 단호히 밝혔다"고 했다.


한국 대통령의 발언은 즉각 세계로 퍼져나갔을 것이다.

김정은은 한·미 공조에 의한 북핵 해결 압박이 한층 강해질 것 같다고 느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는 한 배 탄 동맹이란 걸 실감했을까.

시진핑 주석은 한·미 간 틈을 벌리긴 쉽지 않겠다고 생각했을까.

아베 총리·푸틴 대통령은 어땠을까. 한반도 주인으로서 북핵을 해결해야겠다는 한국의 결의(決意)가 얼마만큼 전해졌을까.

미국은 지난 1일 하와이에서 30년 만에 처음으로 핵 공격 대피 훈련을 실시했다.

이번 주에는 더 강도 높은 훈련을 한다고 한다. 일본도 핵 공격 대피훈련 계획을 짜고 있다.

북한에 석유를 공급하는 중국도 비상(非常)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한국만 예외다. 각국 정부의 북핵 인식 차이를 반영하고 있다.


대통령 중국 특사였던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7일 "중국식 북핵 해법(解法)인 쌍중단(雙中斷)과 쌍궤병행(雙軌竝行)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데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의 인식이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북핵 구도를 바꾼 "11·29 미사일 발사가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는

구체적 증거가 없다"고 했다. 그러자 '다들 위기에 몰리면 모래 속에 고개를 처박는 타조와 같다'는 말이 날아왔다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特補)는 "북한 핵·미사일 개발 원인은 미국의 대북 적대(敵對) 정책"이란 게 오랜 소신이다.


이런 발언과 인식의 뿌리는 "핵과 미사일 개발은 외부 위협에서 자신을 지키는 억제 수단이라는 북한 주장에

일리(一理)가 있다"는 2004년 노무현 대통령 발언이다.

노 전 대통령은 2006년 외국 투자자들과의 자리에서도 "북한이 (핵무기를) 왜 만드는가, 한국을 공격할 것인가를 냉정하게

짚어보면 그 답(答)이 나온다"고 했다. 북한이 외부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는 것에 일리가 있다던

사람들은 북한 핵 위협에 노출된 한국의 핵개발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든다. 논리의 모순이다.

미국에서 먼저 흘러나온 한국과 일본의 독자 핵무기 개발은 과거라면 생각할 수 없는 발상이다.

핵무기로 무장한 일본은 미국에도 큰 위험이고 도박이다.

그러나 중국을 움직이게 하려면 '북한 핵이냐 일본 핵이냐'라는 카드를 꺼낼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일본과 전쟁을 벌였던

미국에서 나온다는 건 보통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다.


생각할 수 없는 것까지 생각하지 못하면 결국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진다.

전쟁 가능성이 커지고 한국 국익과 미국 국익이 충돌하고 한·미 동맹에 금이 가는 상황이 그것이다.

자기 문제 앞에서 주인이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면 손님 자리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대화의 자리에서도 대결의 자리에서도 손님 자리는 뒷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