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79] 평온한 농촌, 건실한 농부의 모습…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향수였다

바람아님 2013. 10. 16. 19:06

(출처-조선일보 2012.09.25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한 농부가 곡식을 가득 얹은 손수레를 밀고 있다. 추수를 기다리는 들판만큼이나 따스한 느낌의 황금빛 햇살이 온 화면에 스며들었다. 돌담이며 농기구, 담장 위로 수북하게 피어난 꽃까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소박하기 그지없지만, 결코 초라하거나 궁핍한 기색이 없는 평온한 농촌 풍경이다. 이는 흔히 '농부 화가'로 잘 알려진 장프랑수아 밀레(Jean-Francois Millet·1814~1875)의 작품이다.

눈길을 잡아끄는 새파란 바지를 입고 외바퀴 수레를 능숙하게 다루는 농부의 뒷모습은 여유로우면서도 굳건하다. 밀레의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농부가 그렇듯이,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밀레는 한 사람의 개성적인 초상화가 아니라 노동, 그중에서도 땅을 일구는 농사일을 묘사하는 데 집중했던 것이다. 그는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오직 온몸을 움직여 힘들게 일한 만큼만 가져가는 정직하고 성실한 노동의 고귀한 가치를 이처럼 이상적인 농부의 상(像)을 통해 표현했다.



	밀레 '손수레를 미는 농부' - 1848~1852년, 캔버스에 유채, 45×38㎝,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
밀레 '손수레를 미는 농부' - 1848~1852년, 캔버스에 유채, 45×38㎝, 미국 인디애나폴리스 미술관.
그러나 밀레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의 프랑스에서는 이미 산업화와 기계화의 물결이 농촌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었다. 도시뿐 아니라 시골도 대규모 자본으로 기계와 저임금 인부들을 동원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사업가들의 각축장이 된 것이다. 밀레의 그림이 각광을 받았던 것은 그 속에서 빠르게 사라지는 존재, 즉 평온한 농촌과 건실한 농부에 대한 향수의 소산이었다.

밀레의 그림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온 국민이 전력을 다하던 1960~70년대에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다. 국민 대부분이 농부의 자식이던 시기였다. 쌀은 논이 아니라 마트에서 난다고 믿는 요즘 아이들 눈에는 밀레의 그림이 어떻게 보일지 궁금하다. 


Jean François Millet, Paysan avec brouet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