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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전제품 버리니 月 전기료 1500원… 삶은 더 풍요로워졌죠

바람아님 2018. 3. 9. 06:31

(조선일보 2018.03.08 김태훈 출판전문기자)


[이나가키 前 아사히 기자 인터뷰]


동일본 대지진 후 절전 생활 담은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 펴내
"삶에 필요한 것 생각보다 적더라"


"더위는 그냥 참고 겨울엔 뜨거운 물을 넣은 탕파(湯婆) 하나로 견딥니다. 밥과 국은 휴대용 가스버너로 끓이지요."

아사히 신문사를 그만두고 퇴사 준비 과정을 담은 책 '퇴사하겠습니다'를 써서 화제가 됐던 이나가키 에미코(52)의

새 책 '그리고 생활은 계속된다'(엘리)가 번역돼 나왔다. 혀를 내두르게 하는 절전 사례들이 가득하다.

월 전기료로 약 150엔(약 1530원)을 낸다는 그는 '모든 게 2011년 3월 11일 동일본 대지진 때문'이라고 책에 썼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는 걸 보고 절전을 시작했다"는 그에게 동일본 대지진 7주년을 앞두고 이메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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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가키 에미코씨는 “절전을 시작한 뒤로 삶을 이해하는 방식도 바뀌었다”고 말했다. /엘리


―절전하는 생활을 '개인적 차원의 탈원전'이라고 표현했던데.


"후쿠시마 원전 폭발 같은 사고가 터지면 책임자가 누군지 따지게 된다. 하지만 전기의 편리함에 젖어 살아온 내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 걸까. 고민하다가 '내가 쓰는 전기에서 원전 공급량만큼을 뺀 나머지 전기로 살아보자'고 결심했다."


―전기료를 얼마나 아꼈나.


"전에는 한 달에 2000엔쯤 냈다. 많은 편이 아니었지만 줄이고 또 줄였다. 전등도 거의 켜지 않는다.

밤에 귀가하면 현관에 서서 눈이 어둠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린다."


탈원전 시위에는 참석하지 않는다고 했다.

"시위는 문제가 타인에게 있다는 생각, 따라서 남들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나는 문제가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탈원전 구호를 외치기보다 일상에서 전기를 아끼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절전의식이 범국민적으로 파급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해이해졌다"며

"삶과 생각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원전의 대안으로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과,

태양광 패널과 풍력발전소 설치가 오히려 자연을 훼손한다는 반론이 맞서고 있다.


"원전 사고 후의 궤멸적 상황은 신재생 에너지가 일으키는 환경 파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신재생에너지가 원전을 대체하면 미래는 장밋빛일까.

나는 절전을 시작한 뒤로 전기가 풍족해야 잘 살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우리를 불행에 빠뜨리지 않나 의심하게 됐다.

우리는 전기로 인해 많은 것을 손에 넣었지만 동시에 많은 것을 잃었다."


전기 없는 삶은 그의 일상을 바꾸더니 삶을 이해하는 방식까지도 바꿨다.

그는 "전기밥솥과 냉장고를 졸업한 뒤로 그날그날 먹을 것만 요리하게 돼 상한 음식을 버리는 일이 없어졌다"고 했다.

세탁기를 버리고 매일 빨래하면서 여벌의 속옷이나 양말도 줄었다.

그는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며 "적은 물건만 갖고 생활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니

미래에 대한 불안도 벗어나게 됐다"고 했다.

그렇게 비운 자리엔 새로운 것이 들어왔다. 에어컨을 버리고 창문을 열었더니 바람 소리, 풀벌레 소리가 들렸다.

전기 청소기 대신 걸레를 든 이후 마룻바닥이 반짝이면 마음이 따라서 반짝인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모두가 당신처럼 살면 경제가 쪼그라들고 결과적으로 일자리도 줄지 않을까.


"경제성장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다들 갖고 싶은 게 많았다.

지금은 오히려 물건이 넘쳐나서 문제가 된다. 내 아버지는 가전제품 제조회사 영업사원이었다.

처음엔 아버지가 가져오시는 물건들이 반가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보너스를 받으면 회사 제품을 사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떡방아기, 제빵기는 물론 달걀 삶는 기계까지 가져오셨다.

이런 물건들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짓누른다."


그는 "우리는 문명의 커다란 전환점에 서 있다"고 했다.

"정말로 흥미진진한 시대 아닌가요? 나는 그 속에서 힘껏 제대로 살아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