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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문재인 경제 브레인들의 착각

바람아님 2018. 3. 22. 08:21

중앙일보 2018.03.21. 01:23


GM은 자율주행과 전기차에 집중
군산 폐쇄 넘어 한국 철수할 수도
구글·페이스북 신화에 사로잡혀
정부의 '묻지마 청년 창업' 안 돼
현실 인식 오류는 정책 실패 원인
이철호 논설주간
지난 2월 9일 두 개의 큰 뉴스가 나왔다. 그날 오후에 GM의 배리 앵글 사장이 방한해 군산공장 폐쇄방침을 흘렸다. 그리고 밤에는 평창올림픽 개막식에서 인텔이 드론쇼를 뽐냈다. 기술전문가들은 이날 인텔의 드론쇼를 보면서 한국GM의 불길한 징조를 읽었다고 입을 모았다. 인텔 드론과 GM의 한국 철수는 깊게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인텔의 드론쇼는 평창의 ‘진짜 승자’라는 칭송을 받았다. 하지만 진실은 정반대다. 드론쇼는 인텔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기 때문이다. 인텔은 여전히 컴퓨터 CPU를 지배한다. 하지만 D램 사업은 오래전에 접었고 모바일 시대에는 스마트폰용 AP 경쟁에서 퀄컴의 스냅드래곤에 무릎을 꿇었다. 최근 인공지능에서도 인텔의 CPU는 한때 게임용 그래픽 카드나 만들던 2류 업체 앤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에 밀려 맥을 못춘다.


주가만 봐도 알 수 있다. 앤비디아 주가는 3년 만에 10배 넘게 올랐다. 앤비디아 GPU는 비트코인 채굴용으로 노다지를 캤고, 데이터센터 붐을 타고 또 한 번 불티나게 팔렸다. 앤비디아는 GPU를 앞세워 자율주행 분야에서도 최강자다.

드론은 궁지에 몰린 인텔의 마지막 승부수다. 드론쇼의 핵심은 위성항법시스템(GPS)과 자율주행, 사물인터넷 기능이다. 드론에 장착한 CPU와 GPU, 메모리, 통신칩을 한꺼번에 통합한 복합 반도체가 인텔의 비밀병기다. 인텔은 여기에다 앤비디아를 따라잡기 위해 17조6000억원을 퍼부어 자율주행의 양대 산맥인 모빌아이까지 인수했다.


현재 전 세계 자율주행업체들은 2020년까지 레벨4(고도 자율주행=위기가 닥치면 운전자가 졸더라도 알아서 갓길로 피하거나 스스로 멈추는 수준)를 목표로 혈전을 벌이고 있다. 그런데 앤비디아·인텔·구글·애플·테슬라 등을 제치고 최근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기업이 있다. 바로 GM이다. 최근 조사에선 자율주행 종합 1위까지 차지했다. GM이 자율주행과 전기차에 아낌없이 돈을 쏟아붓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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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GM이 벼랑 끝에 몰린 비밀도 여기에 있다. GM의 글로벌 경영전략이 싹 바뀐 것이다. 지금 정부는 감원을 막기 위해 공적자금까지 쏟아부으며 ‘존버~’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재인 경제 브레인들의 착각이다. 이대로 가면 군산공장 폐쇄로 끝날 일이 아니다. 노조의 임금 삭감이나 GM의 경영전략이 완전히 변하지 않는 한 GM의 한국 철수는 시간문제나 다름없다.


이런 인식 오류는 문재인 정부의 ‘청년 일자리’ 사업에도 마찬가지다. 이번 청년실업 대책도 중소기업 취업자에게 1000만원을 지원하고 청년 창업에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게 두 기둥이다. 정부가 여전히 ‘청년 창업’에 매달리는 것이다. 그 배경에는 대학을 중퇴한 빌 게이츠, 대학생·대학원생들이 모여 만든 페이스북과 구글의 성공신화가 깔려 있다. 하지만 환상일 뿐이다. 미국의 카우프만 재단이 기술벤처 652개를 조사한 결과 미국에도 35~44세 창업이 45%로 가장 많았다. 그다음 25~34세 창업이 26%, 45~54세가 18%였다. 대학을 나와 평균 12년 이상 사회생활을 한 것으로 조사됐다. 한마디로 미국도 20대 벤처는 드물고 학교를 나와 충분한 경험을 쌓은 뒤 창업하는 게 대세다.


한국도 이제 ‘묻지마 청년 창업’보다 대기업 사내 벤처나 대기업 스핀 오프 쪽에 관심을 기울이는 게 훨씬 현실적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적폐로 몰릴 뻔한 박근혜 정부의 19곳 창조혁신센터를 그대로 유지한 것은 올바른 결정이다. 문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처럼 창조혁신센터도 발전시킬 점이 많은데 굳이 없앨 필요가 없다”며 혁신성장의 거점으로 삼았다.


이제 현 정부 경제 브레인들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념이나 진영논리는 인식 오류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GM 군산공장이 있는 전북은 민주당 소속의 송하진 지사가 버티고 있다. 송 지사는 행정학 논문에서 ‘(현실)인식 오류·(정책)설계 오류·집행 오류’가 정책 실패를 부른다고 분석한 바 있다. 특히 현실을 잘못 인식하는 오류가 정책 실패의 가장 흔한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청와대 경제 라인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인식 오류를 범했는지 복기해 볼 필요가 있다. GM이 경영자원을 전기차와 자율주행에 집중할 동안 군산공장은 왜 구조조정에 소홀했는지, 미국의 구글이나 페이스북 성공 신화에 홀려 우리 청년들까지 위험천만한 묻지마 창업에 떠밀지 않았는지 말이다. 잘못된 현실진단은 잘못된 처방을 낳는다. 포브스지 등 외신들도 요즘 “정치와 외교는 탁월하지만 잘못된 경제정책이 한국의 미래를 위태롭게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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