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은 수도 베이징시와 맞닿은 텐진시, 또 이 두 곳을 둘러싼 허베이성을 합쳐 징진지(京津冀) 지역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나라로 따지면 서울·인천·경기도같은 느낌이죠. 이들 지역은 지리적으로 붙어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정책을 시행하는데 묶어서 진행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테면 지역개발 계획도 합동 발전안이란 이름으로 묶어서 진행하는데, 베이징엔 수도 기능만 남기고, 공장 지역은 허베이성으로 옮겨 거점 지역별 발전을 꾀하는 경웁니다. 그래서 지하자원이 풍부한 허베이성은 에너지산업, 석탄가공산업, 건설재료 산업 등이 집중돼 있습니다.
허베이성 해안도시 친황다오시에 위치한 A사는 유리병 생산가공 업체입니다. 당연히 유리의 원료인 규사를 탄산나트륨,탄산칼슘,석회 등과 섞어서 녹이는 공장을 갖고 있습니다. 이런 걸 녹이려면 최소 섭씨 500도에서 1700도에 달하는 용광로가 필요한데, A사도 이런 용광로를 4개나 갖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생산공정에선 대기오염물이 배출될 수 밖에 없는데, A사의 공장에서도 이산화유황,질소산화물 들이 많이 배출됐습니다.
중국 공장들도 대기오염물 배출이 불가피한 상황에선 오염배출 허가증을 반드시 취득해야 합니다. 설령 허가증이 있더라도 배출표준량 이하로만 배출이 허용되는 건 당연한거구요. 그러기 위해선 대기오염물 배출을 줄이기 위한 여러가지 장치들을 철저하게 갖춰야 합니다.
하지만 A사는 이런 규정을 모두 무시했습니다. 오염배출 허가증은 아예 발급받지도 않았고, 배출량은 기준량을 훨씬 넘겼습니다. 단속을 나온 환경보호 부서에서 수 차례 시정 명령을 내렸지만, A사는 벌금만 내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습니다. 4차례에 걸쳐 낸 벌금만도 1,289만 위안, 우리 돈으로 22억원에 달합니다. "넌 단속해라, 난 내 갈길 간다" 딱 이런 마인드로 버텼습니다.
중국도 공익단체들이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시민단체 역할과 똑같진 않아도,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중국의 환경공익단체인 녹색발전기금이 A사를 겨냥했습니다. A사의 막무가내 대기오염을 가만히 두고볼 수 없다면서 2016년 3월에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이른바 공익 소송인거죠.
중국도 지난 2015년부터 환경오염에 대한 공익소송이 가능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했습니다. 이 규정에 따라 대기오염에 대한 직접 피해를 받은 개인이 아닌 공익단체도 A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게 가능했던 겁니다. A사가 모든 사람이 마시는 공기를 오염시켜 공공의 이익을 침해했으니, 그에 따른 책임을 지라는 것이죠.
녹색발전기금은 소송을 통해 4가지를 요구했습니다. "미세먼지 배출을 당장 중단하라. 대기환경을 복원하라.(이게 가능할런지는 의문입니다), 환경오염 손해를 배상하라. 언론매체를 통해 국민에게 사과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단 소송이 진행되니, 그때까지 꿈쩍않던 A사가 움직였습니다. 소장을 받고 몇 달만에 부랴부랴 환경보호 검수를 통과했습니다. 이미 당연히 갖고 있어야 할 오염배출 허가증을 그제서야 발급받았단 얘깁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진행해온 대기오염에 대한 심판은 받아야겠죠?
법원은 A사의 환경 훼손 기간을 행정처분을 받은 뒤부터 뒤늦게 오염배출 허가증을 받은 기간만큼을 불법행위를 저지른 기간으로 산정했습니다. 이 기간동안에 A사는 이산화유황 33톤, 질소탄화물 75톤을 배출한 것으로 계산됐습니다.
이에 법원은 A사에게 155만 위안, 우리 돈으로 2억6천5백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법원은 이 돈을 친황다오시 별도계좌로 지불해서 환경오염 복원 업무에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하지만 언론매체를 통해 국민에게 사과하라는 청구는 기각했습니다.
이번 허베이성 판결은 중국의 환경오염에 대한 공익소송에서 내려진 첫 판결입니다. 사실 A사의 불법행위 정도와 환경보호 부서에서 내린 벌금에 비하면, 법원이 판결한 배상 금액은 적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행정기관이 부과하는 처분과 달리 법원의 판결은 사회적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분명히 다릅니다.
이번 소송을 맡은 재판관도 "소송 결과가 미칠 사회적 파장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법원도 판결로 결론을 내리기보단 조정과 중재를 통해 일을 마무리해보려고 했지만, 결국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밝혔습니다.
대기오염에 대한 손해배상 판결을 내린 이번 소송 결과는 앞으로 유사 소송의 선례가 될 것이 자명합니다. 이미 제기된 유사 소송에도 길잡이가 되겠죠. 대기오염물을 배출하는 공장 입장에선 어느 누구한테 소송을 당할 지 모르니까 더욱 신경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될겁니다. 안그래도 환경보호 부처가 대기오염 단속을 강력하게 밀어부치고 있는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습니다. 반대로 국민들 입장에선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하나, 이번 판결은 중국의 대기오염 개선에 대한 의지도 읽을 수 있습니다. 중국 사회 특성상 이례적이고 할 수 있는 공익 소송까지 인정하고, 행정부는 물론 사법부까지 나서서 대기오염에 대한 경고를 하고 있는 셈이니까요.
정성엽 기자js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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