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2018.06.05. 00:24
청와대는 어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통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전달한 친서 내용에 대해 “북·미 정상 간 비공개 친서 내용은 우리 정부가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 간 긴밀히 소통이 이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북·미 협의에서 나온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청와대의 설명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백악관에서 김 부위원장을 만난 뒤 비핵화와 관련한 대북 경제지원에 대한 기자들 질문에 “한국이 그것을 할 것이고, 중국과 일본도 도움을 줄 것으로 본다. 미국이 돈을 써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우리는 6000마일이나 떨어져 있지만 그들(한·중·일)은 이웃 국가”라고 이유를 댔다. 수백조원의 천문학적 비용이 드는 대북 경제지원 책임을 한·중·일, 특히 우리나라에 떠넘기겠다는 것이다. 북핵 협상은 미국이 자국 이익을 앞세워 주도하면서 돈은 우리에게 내라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북한 비핵화에 대한 지원이라면 우리도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합리적으로 이뤄져야지 모두 부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핵 해법을 놓고도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북한에 대한 완전한 비핵화를 일괄타결 방식으로 추진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김 부위원장을 면담한 뒤 말이 바뀌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정상회담은 하나의 과정이 될 것이고, 나는 12일에 무언가에 서명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우리는 천천히 갈 수도 있다”고도 했다.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 속도를 늦추겠다는 뜻이다. 그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원칙도 거론하지 않았다. 뉴욕타임스는 북한이 요구하는 ‘단계적 해법’을 트럼프 대통령이 수용한 것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미국이 자국 안보와 직결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폐기하고 핵의 일부만 없애는 선에서 북한과 빅딜 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기업가 출신인 트럼프 대통령은 6·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한 ‘거래의 기술’을 동원한다. 혈맹의 한·미 관계와 안보 문제를 사업가식으로 접근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이것이 우리가 직면한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이다. 미국과의 공조는 물론 중요하지만 미국의 이익이 한국의 이익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음을 염두에 둬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의 안보 이익이 훼손되지 않도록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한반도 정세에서 한 발을 잘못 내디디면 천길 벼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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