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90] 그녀 뒤에 펼쳐진 저 화려함들… 아뿔싸, 모두 거울 속 虛像이었네

바람아님 2013. 11. 10. 21:03

(출처-조선일보 2012.12.18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Edouard Manet·1832 ~1883)의 말년 작 '폴리베르제르의 바'의 배경은 19세기 말, 파리 유흥가를 주도하던 나이트클럽인 폴리베르제르다. 만찬과 함께 오페라와 코미디, 대중가요와 서커스 등 다채로운 공연을 제공하던 폴리베르제르는 지금도 그 자리에서 성업 중이다.

가슴이 깊게 파인 검은 드레스를 입은 젊은 여인이 술병과 과일을 늘어놓은 대리석 바 건너편에 서있고, 그녀의 등 뒤로 사람이 가득 들어찬 객석이 보인다. 왼쪽 위 구석의 삼각 그네와 초록색 양말을 보니, 관객은 지금 샹들리에 불빛 아래서 먹고 마시며 서커스를 즐기는 중인가 보다. 그러나 뚜렷하게 그려진 여인에 비해 객석 모습은 윤곽선이 흐릿하고 군데군데 흰 얼룩이 있다. 그림을 다시 잘 살펴보면, 사실은 금테를 두른 큰 거울이 여인 뒤에 걸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복잡해 보였던 그림 속 공간은 알고 보니 거울과 바 사이의 비좁은 곳이었고, 수도 없이 많은 사람은 그저 거울에 비친 허상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림 속에 서있는 인물은 그녀, 바텐더 한 명뿐이었던 것이다.

에두아르 마네 '폴리베르제르의 바' - 1882년, 캔버스에 유채, 96×130㎝, 런던 코톨드연구소 소장.

(Manet_Bar at the FoliesBergere)


거울의 오른쪽에 그녀에게 다가온 남자가 비친다. 술을 주문하고 있거나, 아니면 그녀의 하룻밤 몸값을 물을 수도 있다. 당시의 바텐더는 매춘부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녀와 객석을 차지한 손님들은 비록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보고 있을지라도 서로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 그녀는 오히려 팔려고 내놓은 술이나 과일과 비슷한 처지다. 마네는 바 위의 술병 중 제일 왼쪽 병 라벨에 서명을 남겼다. 이름을 걸고 그림을 파는 그도 그녀와 별 차이 없다는 은밀한 고백일지도 모른다.